곤고한 사람
페이지 정보
본문
지구에 사는 사람이면 중력을 몰라도 누구나 중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몰라도 그 세우신 계명과 도덕에 지배를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나는 곤고한 사람” 이라며 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빚을 졌나요? 몸이 아픈가요? 아닙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자기 안의 갈등과 모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1) 생명의 모습
사도바울의 이런 모습은 주님이 주신 생명의 모습이고, 성숙의 모습이고, 발전되는 모습이기에 성화되는 성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윤이가 우리에게 오면 아빠엄마를 찾고, 엄마아빠에게 가면 우리를 찾는 모습과 같습니다.
전에는 없던 모습인데 좀 더 크면 달라질 것이고 또 다른 모습이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 현상이 있어야 좋습니다.
건강한 증세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살았던 죄의 세력이 내 지체 속에서 활동하며 나를 종전처럼 주관하고자 합니다.
반면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다스리십니다.
이 둘의 충돌로 나는 곤혹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롬7:22~2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
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도다
사도바울의 경우 예수를 구주로 믿기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주님을 구주로 믿고 난 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에,
자신을 살피고 검증하므로 비로써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현상과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을 말하는가요?
우리 신앙은 관념적이질 않고, 반도덕적일 않고, 개인적이거나 극단적이질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한편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는 이 현상이,, 사도바울
에게나 혹은 몇몇 믿음 좋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기나 독감이 만인에게 동일한 증세로 나타나듯이
구주를 믿는 성도에게는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보이지 않은 내 안의 두 세력으로 인한 이 갈등과 이 불화가,,
성도라면 누구나 곤고한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습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이기에 구원의 보증이요, 주님의 생명인 영생이 있다는 증표인 것입
니다.
만약 이럼이 없고, 이것이 없다면 무엇인가요? “너희는 버리운 자라”, 반면 있다면 어떨까요?
고전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 하나님의 것이니라
2) 성령의 사람
이 곤고함에서 벗어나고 감사의 사람이 되는 비결은 오직 하나,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롬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
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이라는 여종으로부터 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정욕으로 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아들이 생겼는데 이삭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먼저 태어난 육체의 정욕으로 난 아들 이스마엘이 나중 태어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자꾸 군박했기에 이 일로 집안
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둘 다 아들이라도 어미가 다른 만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인과 첩의 갈등,,이 일은 실제 일이지만 우리를 향한 역사예화입니다.
우리 안의 두 세력을 웅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따르는 믿음과 육체소욕을 따르는 죄의 성품과의 갈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아들 이삭을 위해서 육체로 난 아들 이스마엘과 그 어미 하갈을 내 좇으라 하셨
고 아브라함은 즉시 준행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이삭이 되었고 집안은 평안이 왔습니다.
성도도 성령으로 살 때 평안이 옵니다.
롬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
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또한 내 지체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지만,,성령의 성품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
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게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3) 감사하리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통일된 상태로서의 평안이 왔고 또한 감사가 있는 신앙이 됩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
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느니라
그런데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느니라” 가 이상합니다.
여기에 역설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일찍이 죄에 오염되었기에 불완전하고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그 갈등과 모순을 받아 드리며 곤고한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 완전한 성화의 삶을 향해서 믿
음의행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죄의 법에서 침묵하고 잠잠할까요?
성숙하고 성장할수록 죄에 대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죄의 법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음식물이 속에서 불편하면 토하듯이,, 건강한 성도일수록 성령을 따를수록 죄는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마침내 발전하고 발전해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다윤이가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쉽게 하질 않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말도 한 단어부터 발전해서 두 단어 세 단어을 거쳐 문장을 이루듯이,, 성도
의 성화가 그렇습니다.
죄의 지배력에서 벗어났지만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보혜사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고 능력이고 권세입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이 힘에 압도당해야 죄악을 죄악으로 분별하며 끊어내고 이기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 있듯이 광야에 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살이 했던 모든 생각, 습관, 의복 등을 버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시며 조석으로 만나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몸소 만나고 실감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 이전글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24.04.28
- 다음글무슨 말을 할까요? 24.04.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