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지와 곁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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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불평등의 신분제도가 확실했습니다.
서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했고 과거도 응시하지 못했습니다.
홍길동이 대표적인 예이고,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도 공주가 아닌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차별,, 우리는 잘 몰라도 세상은 언제나 만연하고 또 계속할 것입니다.
1) 차별
차별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올리는데 그만큼 골이 깊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비정규직은 1년 마다 계약을 하는데 안 되면 퇴사해야 하니 같은 일을 해도 대우가 다르고 고용신분은 불안
합니다.
전도사님이나 부목사님도 1년 계약직이기에 저도 가장으로써 겪었던 일입니다.
2년대와 4년제 대학의 졸업자의 차이를 아시나요? 아님 지방과 서울의 차이를 아시나요?
장애자와 비장애자는? 여성과 남성은? 흑인과 백인은? 본족과 소수민족의 차이는?
연길의 조선족목사님은 “ 천국에 떼놈이 있으면 천국은 안 가겠다”고 노래를 합니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당한 차별이 사무친 것입니다.
이런 차이와 차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차이는 다양함 속에서의 엄연한 구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구별이,, 좋게는 선별도 된다지만,,자기 잣대에 따라 차별이 되어 사회문제는 물론 우크라이나와 러
시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같은 민족전쟁도 됩니다.
이런 차별,,갈등,,전쟁,,거슬러 올라가면 다름 보다는 사랑 부족입니다.
동물의 세계는 힘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세계라서 그렇다 해도,
사람사회는 하나님중심의 사회이기에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런다는 것이 타락이며, 변질이고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하심이 여기서의 구원이고,,
교회가 세워짐은 이 하나님나라의 임하심이며 하나님사랑의 실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도 성도들의 마음에서는,, 가정에서는,, 생업에서는,, 모임에서는,,
힘과 용모나 실력이나 능력에 의한 차별보다는 구별을 하되 약하고 못날수록 되레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소지에게 행한 태도가 곧 주님께 행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사랑도 없이 이론상으로만 이처럼 평등하게 함께 살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 공산주의였습니다.
이상적인 이념의 나라는 끝나버렸는데 아직도 추종자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하나님나라가 현실판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죽어야 하고 주님이 흥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나라의 본보기로써 불신앙의 이스라엘을 잠시 제쳐두시고,
이방민족을 먼저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롬11:11~1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
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
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풍성함이리요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하나님나라의 특징은,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요, 의와 사랑의 거룩한 나라요. 교회를 통해서
확장되며, 영원하며,, 온유하고 겸손할수록 큰자가 되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2) 주님의 신비한 섭리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섭리를 다 모릅니다.
왜 이스라엘을 제쳐두시고 이방민족에게 먼저 구원을 주셔서,, 그들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나라를 확장
하시는지,,? 깊고도 큰 섭리를 다 이해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섭리에 나무의 접붙임을 용예로 말씀했습니다.
나무뿌리는 놔두고 품종이 다른 가지를 접붙이셔서 좋거나 다른 품종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가 되게 하셨다는,,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필요에 의한 섭리적 접붙임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제식민시절 온갖 수탈당했는데 산의 나무도 있었습니다.
재목감은 다 베어가고 산사태를 방지한다며 심은 것이 독일산 속성수인 아카시아였습니다.
아 아카시아가 해방이후 우리의 산들을 지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완전하신 분이신데 왜 본가지인 이스라엘을 나누고 곁가지인 이방인을 접붙이셨을
까요? 반복하면 왜,, 교회가 되게 하셨나?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신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을 시기심을 부추키기 위함입니다.
롬11:11) ~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좋은 숫말과 교배하기 위해서 먼저 암말의 발정을 돋우는 숫말이 있다면 믿겠나요?
크고도 넓은 하나님통치와 질서를 따라 쓰임새가 다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그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시지 않고 어눌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아론은 모세를 돕는 대언자였고 훗날 아론과 그 후손은 제사장직으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누가 이의를 달 수 있나요?
(이스라엘은 구원의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민족이라 믿습니다.)
둘째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입니다.
롬11:25) ~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건축자가 어떤 집을 짓느냐 따라 벽돌을 많이 사용하거나 돌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열방과 모든 족속을 향한 나라이기에 이방인을 부르셔서 사용하시
는 것입니다.
그 충만한 숫자를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히 하나님께는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차별은 없으나 구별은 정확히 있기에 본분을 알고 맞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본가지가 맞습니다.
믿음의 위인들이 다 여기서 나왔고, 율법도, 그리스도도 이 혈통에서 나왔기에 그렇습니다.
우월하며 섭리적으로 탁월한 민족이 맞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건축과 확장에는 맞지 않아 이방민족을 들어 한시적으로 사용하시는 줄 믿습니다.
3) 성도의 본문
여기에 이방인의 본문과 교회적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그 본가지를 향하여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롬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
를 보존하는 것이라
옛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포로되게 했던 강대국들과 사나웠던민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2차 대전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홀로코스트는 히틀러의 자만에서 비롯된 대학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옛날이나 현대나 다 망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롬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
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찎히
는 바 되리라
우리는 역사의 교훈도 있지만 성경의 교훈을 새겨야 하고 가르켜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성도의 본문이 색다르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그 신앙의 기본을 말씀하고 주문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매너가 인성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도 행위가 믿음이 맞습니다.
성경구절을 암송만하거나 배우려고만 하지 말고, 액자에 넣어 붙이기만 하지 마십시오.
롬8: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
게 하려 하심이라
긍휼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고 자비이며 동정입니다.
과연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사진으로 찍어놓고 종종 보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구절이 미가서의 말씀입니다.
미6:7~8)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
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며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엄밀히 말씀하면 이처럼 살지 않기에 주문하신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때야 하나요?
결론) 사람의 기본과 신앙의 기본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기본이 망가짐으로 세상도,, 교회도 무너져버렸습니다.
다시 세움이 주 안에서의 삶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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