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이기세요.
페이지 정보
본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은 큰 믿음이기에 곧 영생과도 직결됩니다.
하나님 살아계심과, 창조하심과, 운행하심과, 감찰하심과, 심판하심과,
구원하심을 믿음은 이성적인 일 같아도 실제는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는 일이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살아계심에서 영원성을, 창조하심에서 전능성을, 운행하심에서 신실성을, 감찰하심에서 전지성을,
심판하심에서 완전성을, 구원하심에서 사랑하심도 믿게 됩니다,.
1) 믿음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흔히 믿음의 유형을 성경에서는 아이들, 청년들, 아비들 같이,,또는 발목신앙, 무릎신앙, 허벅지신앙, 가슴신앙,
그리고 동, 은, 금과 같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거듭난 후 스스로 경건을 이루는 신앙이 있고, 나아가 주변에 선한영향을 나타내는 신앙이 있고,
마침내 적극적으로 마귀나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마틴루터 같은 신앙이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시절에 한국교회는 천황숭배에 대한 여러 모습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회에서는 “천황숭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생활이다” 하여 억지합리화를 이루었으나 실제는 반성경적
이고 반 믿음적임을 부인할 수 없었으나,,
*천황을 향해서 절한 목사가 다수였고,
*목회를 접고 시골로 낙향한 목사들이 있었으며,
*거부하며 투쟁한 소수의 목사도 있었습니다.
훗날 해방 후 이 때문에 한국교회는 큰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늘 궁금한 것이 “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식사기도에 내가 모자 벗고 기도했다고 했지요?
이제는 그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목사님이,,며칠 전 그 얘기를 또 했습니다.
“목사님이,,모자를 벗고 기도하신 것이 처음이었어요, 우리교회는 남자들도 다 모자 쓰고 예배해요, 처음에는 여성
들이 모자 쓰고 예배하기에 묵인했어요, 여성들은 머리 못 감고 나올 수 있잖아요? 그랬더니 이제는 남자들도 다
쓰고 예배하더라고요”
어떤가요? 나 편한 게 예배인가요? 아님 주님께 향한 거룩한 부담이 예배인가요?
이제는 얘기가 조금 더 나아가서 우리 동네의 모 교회가 “행복한 교회”라고 써 논 것을 내가 지적했더니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행복 보다 거룩을 가치로 여겨야 한다.” 고,,
보십시오.
롬12:1)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들이 좋아하는 행복한,, 싱싱한,,폼 나는 모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제사 즉 예배에 관한 지침서인 레위기서입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기독신앙은 스스로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거룩을 이루는데 촛점이 있어야 합니다.
은사대로,, 분수대로,, 마침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등의 여러 윤리가 있지만 여기에
서의 최선은,, 양이 아닌 질로 나아가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롬12:8)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2) 믿음은 진보해야 합니다.
오를 본문은 지난 주 설교본문에 비해서 좀 더 큰 진보를 주문했습니다.
롬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는 지금 박해받지 않지만 그런 때가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박해 받는다면 이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 될 것이기에 이 말씀은 시금석이 됩니다.
이 믿음의 중심에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리니 내가 갚으리라 ”는 주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에 대한 믿음으로 나는 진실과 의와 거룩에 힘쓰고, 타인에 대해서는 평가절하 하며 나의 원수도 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는 물론,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도 이룰 줄 믿습니다.
결국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의 영적 거인인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가요? 이런 신앙인은 누구에게나 주님을 나타낼 듯합니다.
꽃시장에 가면 생화가 있고 조화도 있는데 대체로 생화는 산사람용이고 조화는 장식용입니다.
그러므로 묘지에는 온통 조화만 있습니다.
유감되게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만 있는 신앙은 생기와 향기 없어 조화 같습니다.
그렇다면 큰 박해와 가난 속에서도 인정받았던 능력의 신앙과 비교해 보십시오.
행5:40~6:1)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
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
니라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행9:29~31)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
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
아지니라
성구사에서 폐기하기 아까운 장의자 7자짜리 40개가 나왔다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틀 동안 군 교회, 노회, 목사동기회 등을 알아봤지만 어디든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각이 많았습니다..이런 의자들을 왜 버릴까? 하여,,느낀 점은 편리하고, 멋있고, 안정되고, 아늑함과 풍성함이 어
느덧 우리의 신앙가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좋습니다. “ 행복한 교회,,” 예수를 믿으면 행복한 삶이 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리인 인과법칙이 따릅니다,,
고난과 고통 없이 직접적으로 이 땅위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주님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주는 것으로 선전한다면 문제입니다.
“대나무가 높게 자랄 수 있는 건,
사이사이 마디로 받쳐주기 때문임,
느티나무가 그늘을 널찍하게 드리울 수 있는 건
쉼 없이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내렸기 때문임,
단풍나무가 불게 물들 수 있는 건
뙤약볕과 가뭄을 견뎠기 때문임,
(생략)
3) 믿음에는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도 목적과 목표가 있고 과정이 있고 방식이 있기에 다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싸움이든, 전쟁이든, 경기이든,,이겼어도 지는 상황이 있는데 불법으로 치룬 경우이고,
반면 졌어도 이긴 경우는 가치 있는 명분이 따른 경우입니다.
우리는 영적싸움을 두려워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이기는 승리가 됩니다.
최근 2년제 포함 대학졸업자 백수가 400만을 넘어서 역대 최고가 되었답니다.
저들의 피폐함, 가정의 부담, 사회적 경제활동의 위축 등,, 생각할수록 불편한 진실입니다.
이유는 여럿이라지만 국가적, 제도적 탓만이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놀고도 먹고 살만한 여건이 된 이유도 있습니다.
주님 보다는 먼저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인본주의 신앙은 겉은 좋아 보여도 고난을 마다하고,,섬기는 것을 거부하
고, 마음부터 하나님이 없고, 두려워함도 없어 심판의 하나님도 모르는 신앙이 됩니다.
어릴수록 자기중심의 먹는 것,, 노는 것에 치중하며,, 청년이 되면 주변을 보면서 정의와 평화도 생각하고 미래도
생각하며 고민도 합니다.
성년이면 완전히 다른 안목의 소유자가 되어 영적인데 마음을 둡니다.
우리는 겉 사람이 낡아져도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는 신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늘 동행하심을 믿고,, 실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로 이어져 오늘만이 아닌, 내일만이 아닌 신앙으로 하나님께 드릴 흠이
없는 산 제물과 영적예배가 됩니다.
결론) 고운 가루에 기름에 붓고 유황으로 태우는 소제가 있습니다.
이 모든 소제물에는 꼭 소금을 쳐야 하는데 언약의 상징으로 거룩한 삶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삶의 절대적 요소가 거룩이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 이전글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24.08.04
- 다음글산제물로 드리십시오. 24.07.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