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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문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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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9-08 08:32 조회 1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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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평양을 방문했던 목사님들 중에서 양복을 입고 주무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친구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으니 “김정일이 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벗느냐? ” 고 했답니다.

평양에서는 모든 일에 감시당하고 있음을 의식한 농담인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의식하느냐는 중요합니다.

 

1) 주 안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붙잡았던 신념이 있습니다.

“코람데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라틴어인데 “주 안에서” 와 같은 의미인 줄 믿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독실할수록 주님을 의식하는데 많이 고백하는 말입니다.

 

며칠 전 요즘 관심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가 주범을 만나지는 못한 체 이름과 회사주소만 파악했다면서 이 주범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 딸인 유명기자의 글이라지만 오보라고 느꼈습니다.

만나지도 않고 “독실하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내렸고, 무엇보다 독실함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앙인데,,그런 범죄

자는 결코 독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비해서 같은 본문이라도 조금 다릅니다.

그냥 “주 안에서 문안하라” 했지.. 이들에 대한 희생이나 감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일등석에서 일반석으로 옮겨진 듯한 차이가 있는데 왜 그럴까요?

앞서 희생했던 성도들에 비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부족해도 같은 교회의 지체요, 형제이기에 소통하고 교제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인도

하는 줄 믿습니다.

 

한 조사를 보았습니다.

“장차 다인종이 유입되어 다문화와 다종교가 될 경우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매우 고무적인 답이 나왔는데 3분의 2이상이 “ 받아드려야 한다.”였습니다.

물론 이 일이 쉽지 많은 않겠지만 여기에는 선교적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통이 가장 잘되고 교제가 활발해야 할 교회가 아직은 그렇지 못한 지경에 있습니다.

끼리끼리의 문화가 크고, 문턱이 없다지만 낯선 이들이나 끼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문턱이 높거나 문을 닫아 버리

는,,이쯤 되면 교회는 독선과 편협과 이기주의의 온실이 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의 문화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문화고, 교회만 공략하는 이단과 사이비와 침투도 컸지만,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의 실천 장이 되려면 주변의 말과 행동을 살펴주어야 합니다.

비록 개인전화 같은 소통의 수단이 많고 빨라졌다지만 이외로 불통의 시대가 되어 고립되거나 운둔된 사람들이 많

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조금만 크면 이럴 수 있습니다.

방배동시절 한 남성도가 주일 예배만 참석했습니다.

남전도회 참석이나 심방맞이도 일절 없었고,,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서서 확인해 만나보니 모 대형병원 소아과장이었습니다.

이외로 상냥했고 친절했기에 그 후 선교차원의 어린아이들을 보냈더니 잘 치료해주었습니다.

이런 성도를 누구도 몰랐다는 일은 목사님의 불찰이었고 모두의 무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일은 많을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가나안교인이 증가했다는데 아직 안 돌아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부터 교회와의 끈이 닿지 않거나 끊어진 탓이 큽니다.

 

2) 문안하라

성도는 “주 안에서” 인사 잘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주 안에서 문안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주 안에서 기쁘고, 하나님께 향한 예절이 사람들께도 미치기 때문입니다.

롬16:8~9)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알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

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

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주 안에서 문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라

어느 덧 인간관계가 가장 힘든 시절이 되었습니다.

나 외에 두 세 사람이 모이면 가족도 부담이 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담프로와 이혼조정프로가 대세인 것과 연인들의 폭력사건이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왜 이처럼 인간관계가 힘들까요?

자라면서 생활훈련이 개인화와 자기중심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일종의 사회성 부족이고 잘 먹고 잘 산 문화 탓입니다.

 

화석연료로 산업이 발달했더니 지금은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자연재해 엘리뇨 현상 아닌가요?

반도체의 발명으로 모든 장비가 디지털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첨단의 기술이 그 이면에 악으로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가 발명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쟁무기로 사용된 것처럼 과학기술도 그렇습니다.

가장 악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멀어진 것은 사람의 관계라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주 안에서의 문안 하라”입니다.

이는 단순한 편지의 끝말이 아니라 주께 하듯 이웃에게 친절하라,,사랑하라는 실천입니다.

상대의 조건이나 하는 것을 보아서가 아니라,,내가 주께 빚진 자가 되어 무조건 이듯이,,

그처럼 되어야합니다.

 

3)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교회는 거룩해 지고 평안해 지는 줄 믿습니다.

롬16:19~20)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

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

어다

 

이웃들은 어떨까요?

케냐의 마시이족을 섬기는 안선교사님이 겪은 일입니다.

어느 날 추장이 부족민 앞에서 선교사님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선교사님도 참았던 감정이 치솟아 추장얼굴에 침을 뱉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순간 자기 행동에 난감하고 낙심했는데,,부족민들이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알고 보니 물 부족지역이기에 침을 뱉는 일이란 자신의 소중한 수분을 상대에게 준 환대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독일이 분단시절 동독사람들은 밤이면 베를린장벽너머로 오물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서독사람들은 이때 식량과 통조림을 장벽에 쌓아놓고 글을 써 놓았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준다.” 우리도 이런 경우를 지금 겪고 있지 않나요?

 

말세에는 기후변화와 함께 인심이 점점 사나워지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요한과 베드로 사도는 구걸하는 걸인에게 다가가서 문안했습니다.

행3:6)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받은 비밀이 있어서 나누며 축복합니다.

 

제가 하는 문안을 소개합니다.

윗집 아랫집,,월세 주는 집주인 등,,

그리고 전화번호에 있는 작고 약한 사람들을 찾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 린치핀(linchpin)을 아시나요?

마차나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작은 핀입니다,

아무리 금마차든 꽃마차든, 바퀴기 빠지면 사고만 있습니다.

이 핀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말없이 섬기는 사람이 성도이고 가장 큰자이며 행복자인 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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