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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 설교말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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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10-20 08:50 조회 1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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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리라도 메아리가 있고 없고 합니다.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산에서는 메아리가 있는 반면 광야에서는 없습니다.

 

1) 세례요한

세례요한을 가리켜 700 년 전의 이사야 선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도 아닌,, 외치는 자의 소리라니,,이는 들을 내용은 있지만 형체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이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도 예언했는데 얼마나 다를까요?

사52:13~15)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 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

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

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보라” 하면서 볼 수 있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어 장사된 후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을 정확히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사촌지간이라지만 그리스도가 아니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나팔수였습니다.

왕된 예수님이 가셔야 할 길을 조금 앞서서 예비하는 사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요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오늘날 이와 같은 소명을 지닌 목사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밥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렇답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밥벌이용 목사는 목사로서 소명이 없는 목사가 맞습니다.

소명이 있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맡기셨다는 이 소명으로 감사와 기쁨과 자신감으로 목회할 수 있고

세상 부러움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목사의 이중직이 옳으니 그르니 하곤 합니다.

누가 뭐래도 목사자신에게 목사는 직업이 아닌 소명,, 하나님의 명령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너는 누구냐면서,,

그리스도냐 구약의 엘리야선지자냐고 물었습니다.

광야에서 역청을 먹고 약대털옷을 입고 살았기 때문인데 실상은 빈곤 살이입니다.

또 오실 메시야인 그리스도도 아니면서 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푸냐고 힐난도 했습니다.

요1: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

여 세례를 베푸느냐

이때 세례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는데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니

요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다 하니라

세례요한의 정체성확립은 자신의 느낌이나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객관적으로,,“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3살짜리가 자기가 입을 옷을 선택하고, 길을 가다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여기서 사진 찍어,,”하곤 하

는데,, 소명이라면서 자기 안의 확신도 없다면 어떨까요?

 

2) 소명의식

소명은 누구나 있지 않고 누구나 같지 않습니다.

마치 비젼처럼 있고 없고 하며, 크거나 작습니다.

소명은, 내가 아닌 소명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목적의식은 사명이고, 내가 꾸는 꿈 의식은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비슷해도 다릅니다.

 

소명에서는 분명한 자기 역할이 주어지며 감당할 은사도 임합니다.

많은 분들이 소명입네 하는 경우, 혹 사명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하고,

또한 내가 좋아서인지, 내가 할만해서 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는 직업윤리일 뿐 소명윤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소명윤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꼭 좋아서 만이 아닌, 할 만해서도 아닌,

하늘에서 어느 날 내려오고 은사로써 감당할 책임이 맡겨진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요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주님은 훗날 이런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고 하셨습니다.

 

옛날부터 하나님께 소명 받은 이들의 공통점들은 다 같습니다.

자기 확신, 온유와 겸손, 그리고 충성이 따랐는데 감당할 힘을 공급 받아서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처음부터 자원한 사도요,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도 어느 날, 다메섹에 핍박하러 가던 중 소명이 임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했나요?

소명 받은 그때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로다” 했었고, 후에는 “죄인 중에 괴수라” 고 했었습니다.

자칭 예수님이고 자칭 보혜사라는 이단들이나 사이비교주들의 특징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계속적으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요1:29~3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

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

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일찍이 사촌지간으로 알았다가 메시야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데에는

절대적 확증이 필요했습니다.

요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

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

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자신에게 소명을 주셨던 그 분,, 세례요한에게는 익숙하고 신뢰하는 분,,누군가요?

하나님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이는 세례요한에게는 큰 획기적 사건입니다.

그 분의 부르심을 따라 국가는 물론 죄사함의 제물드렸던 유대교가 공인하지 않았던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되었

고, 사촌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선포를 해야” 하는,,

이는 지식이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 부르심에 응답인 줄 믿어야 합니다.

요즘은 이 음성을 듣지 못하고 지시를 보지 못하고 믿는 시대라서 얼마나 유감인지요?

성경은 완전한 계시지만 내가 성령을 따라 믿지 못하기에 유혹받고 망할 길로 가곤 합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는 힌두교를 믿습니다.

따라서 힌두달력을 사용하는데 요즘 달력과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달력으로의 새해 첫날,,

그 하루는 소리를 멎고, 빛은 끄고, 일체의 활동 없이 온전히 하루를 쉽니다.

그들이 강제로 멈춘 환경에서 신과 관계를 좋게 하고, 이웃과도 좋게 하고, 자신과도 좋게 하는 의미가 있답니다.

재미난 것은 소리가 멈추었더니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들리고, 불을 껐더니 하늘이 별들이 찬란했습니다.

 

우리가 참고할 이유가 있습니다.

주 음성을 들으려 해서 육체의 귀는 막고, 눈은 감고, 활동을 멈추는 사색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밤낮 너무 활동적인데 이는 비사색적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결론) 보라

현대판 세례요한이 어느 날 나타나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자의 소리로다”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면 어떨까요?

이상한 사람이라면서 동영상을 찍으려 할 것이고, 가짜 뉴스라고 할 것이고, 복장을 보고는 좌파라고 할 것이고, 교

회들은 상대를 안 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편견과 아는 지식이 많고 시대를 따라 가는 추세 때문입니다.

옛날도 그랬기에 주님이 환영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소명자를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누가 갈꼬..하셨던 하나님의 탄식에,,이사야 선지자는 “나를 보내소서”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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