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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 설교말씀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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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11-10 08:15 조회 10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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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인 줄 믿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께 주님을 증언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증언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께 와 주었습니다.

이 속에 몇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1) 메시야에 대한 갈망,

지금 같으면 무엇을 갈망해서 듣고 마음이 움직여서 찾아갈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기당하는 종목을 알면 됩니다.

투자라고 하나 실제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입니다.

이런 일은 자본주의만이 아닌 공산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권세 보다 돈을 더 선호한다는 조사결과도 들었습니다.

옛 조선에는 봉이 김 선달도 있었다니,..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에 트럼프가 투표에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이라면 살기 좋은 나라로 세계민이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살기가 꽤나 어려운 나라이고,, 또 어려운 환경이 되

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역할보다는 미국민을 더 잘살게 한다는 것으로 유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옛날 부자이며 힘센 로마에 압제된 이스라엘에서,,더욱이 가난한 어촌마을 갈릴리에서 메시야를 갈망

했다는 일은 무엇을 의미했는가요?

신앙이 좋거나.. 종교성이 깊다는 의미보다는,,매우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상대방의 꿈을 보면 그 사람의 현 상태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목화 따던 흑인들과 농장주인 백인들이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다른 기도를 한 경우입니다.

흑인 노예들은 자유와 안식을 꿈꿨고,,기도했을 것이고,

백인 농장주는 풍성한 수확과 도망가지 않는 노예와 순풍순풍 늘어나는 노예였을 것입니다.

이 차이가 무엇인가요? 먹고 사는 차이 아닌가요?

언제나 누구나 정말 바닥을 친다면 죽음을 생각하고 또는 메시야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쥐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는 말이 이런데서 파생된 줄 압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중용에 가치를 두는데 이유는 이런 극단을 예방하는데 있습니다.

자칫하면 너나없이 다 잃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과 세계의 관심은 부자됨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온갖 문제와 사고가 있게 됩니다.

아버지시신을 냉장고에 1년 동안 보관한 아들은 유산분쟁 때문이었듯이,,

모든 갈등에는 돈 사랑함이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믿고 따른다면서,,

메시야를 갈망한다면 어떨까요?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비록 가난해도 평화와 행복은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제일로 갈망하는가요?

다음의 주님의 말씀도 심비에 새겨야 합니다.

히13:5~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

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님과의 관계만 좋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이 됩니다.

이는 부자가 되고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 화목해서 고난과 죽음도 이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2) 택하신 제자들

본문에서는 주님의 제자후보들이 등장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요즘 회사채용기준으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론 사도바울도 이력서를 못넣습니다.

학력이 없는,,제자들은 예수님과 삶의 결이 같은 부류였고 사도바울은 전과자였기 때문입니다.

요1:43~45)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

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

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들이 예수님을 서로에게 소개해서 온듯하지만 실제는 예수님이 먼저 택하셨습니다.

요1:47) 예수께서 나다니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

라엘 사람이라 이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말씀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며 다소 회의적이었던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요1:49) 나다니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상황이 된 것은 주님이 저들의 목자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양이기에 이름과 음성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

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던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일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일입니다.

 

한 여성연예인이 며느리를 처음 보면서 눈물을 쏟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간증처럼 했었습니다.

이 여성은 아들을 낳은 후 훗날의 며느리감을 위해서 계속 기도했었는데 어느 날 첫인사를 온 며느리감을 보니 전

혀 낯설지가 않았기에 “너로구나” 했답니다.

저희도 그랬습니다.

이제는 어디선가 태어났을까? 잘 자라고 있겠지? 하며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멀지 않은데서 살던 동갑내기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택하시는 큰일에 지극히 주관적이셨습니다.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더라

여기서 하나님나라의 특성이 들어납니다.

하나님나라는 힘의 나라가 아니고 완전한 복지나 완전한 평등의 나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인가요?

 

3)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이고 그 분의 통치를 받고 오직 순종하는 나라입니다.

거룩하며 온유와 겸손의 나라이고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임했고 계속 임하는 나라이며 마침내는 가시적으로도 영원히 임할 나라입니다.

여기에 12제자들이 기초석으로 등용되었고,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써 지체적인 삶을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함이 주님 안에 거하시고, 그 주님이 머리가 되는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이루

십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

이 신비한 교회,, 위력 있는 교회,, 그리고 지체인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가요?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란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을 고치라가 아닙니다.

사람은 완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완전한 자”는 곧 거룩한 자의 다른 표기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성령 받아 이 죄 사함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이나 삶이 훌륭해도 붙잡고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나라의 모퉁이 돌도 아닙니다.

오직 모퉁이 돌은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신,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리심을 받아 부활 승천하신 우리 대속의

희생양인 주님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구조적인 모든 악을 제거하고 절대적인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외치는

집단이 있는데 기독교좌파입니다.

물론 하나님나라에도 정의나 복지 혹은 평화가 일부 있으나 전체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데서 돌이킵니다.

 

결론) 성도는 주님을 믿어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더불어 전도와 선교로써 사회구원을 이루는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역동적인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고 침노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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