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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승전가 (신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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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1-05 08:52 조회 1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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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우면 어떨까요? 망설임이나 포기가 많습니다.

부안공항사고 후 이발을 했더니 53년생인 이발사는 자신은 비행기 공포증이 있다면서 비행기가 떨어지고 뒤집어질

까 바,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1) 두 종류

이처럼 불안과 염려가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겁이 많고 실패를 두려하는 조심스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험이 없기에 성공은 어렵지만 안전적인 만큼 삶을 세련되게 합니다.

 

반면 모험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도전을 잘합니다.

이런 사람역시 성공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기독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 지식과 신학적 이론으로 아는 신앙이 있습니다.

물론 고백하고 찬송하며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 앞에서 멈추고 떨며 심지어 떠나왔던 세상으로 되돌아갑니다.

 

반면 믿는 신앙이 있습니다.

경험에 기반을 둔 신앙으로 주관적인 것이 문제가 됩니다.

간증이 많고 경험에 의존하며 경험을 또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은 훅하니 올랐다가 훅하니 꺼지는 불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성경은 이 두 가지를 하나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엡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

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

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이단사이비에 빠지고 점에 물 들어서 주를 떠난 이들이 여기에 해당되며 결국 양 발걸음이 아니라 한 발

걸음의 신앙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안다는 것은 담장을 뛰어넘는 기술은 있으나 용기가 부족하여 결국 승리하지 못하는 일이고, 믿는 것은 뛰어넘는

용기는 있으나 기술이 없어 역시 승리하지 못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서 이론과 훈련을 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불확실성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가 점점 짙어집니다.

대학 졸업 후에 가졌던 취업걱정을 중학교 입학 때부터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생직장이 없어졌고 평생직업도 진작에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이 커졌고 요행과 예측에 마음들을 뺏겨 인공지능시대에도 점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알만합니다.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대통령부인이 자기엄마와 함께 점집에 가서 “나 감옥 가나요?” 하며 점을 봤다는 사실을,,

남편이 법조인이기에 법을 잘 알텐데,, 그럼에도 남편이나 법에게 묻지 않고 점을 의지하는 그 심사는 무엇인가요?

불안과 두려움에 잡힌 이유입니다.

 

성도들도 똑같습니다.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실패와 위험과 죽음의 불확실성은 어쩔 수가 없기에 간사한 유혹과

온갖 교훈에 요동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이 있는데 거룩한 담대함입니다.

환경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붙잡히지 않고,

하나님께 붙잡힌 그 손을 붙잡은 온전하고 건강한 믿음의 성도입니다.

요행을 바라는 믿음이 아닙니다.

실제 하나님께 피했기에 위험에서 피할 일과 죽음에서 살 일로 인도 받았거나 건짐을 얻었고, 불확실성에서 확실함

도 보장되었습니다.

같은 세상이요, 같은 시대요, 같은 상황이라지만 다른 결과를,,얻어진 것입니다.

나치수용소에서,,그 죽어가는 상황에서 안나 소녀는 믿음으로 일기를 남겼는데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으며 그 일기

장은 신앙참고서가 되었습니다.

역시 유대인정신과 의사 빅터프랭클도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무런 것이 없었는데 그만 살아졌

고 그 체험수기도 신앙참고서가 된 줄 믿습니다.

금번 비행기사고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죽었을 것이고, 유가족 중에도 믿음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사고요, 죽음이요, 슬픔이라도 눈과 마음이 다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란 프리즘을 보기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희미하나마 약속을 볼 수 있어서입니다.

곧 하나님의 위로가 되는 일입니다.

 

3) 승전가

오늘의 성경구절은 다윗의 승전가입니다.

다윗만큼 전쟁을 치룬 용사는 없고 승리한 용사는 더욱 없습니다.

전쟁이란 100번 승리하고 101번째 패전하면 죽는 것이 고대의 전쟁이었으니 무섭습니다.

그는 말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지 패전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승전의 비결이 있습니다.

30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또 “놋화살을 당기도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온 즉”

다윗이 이처럼 담대함과 용기는 하나님 믿는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22~25절) 그의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더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

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멀리하는 자는 음녀처럼 멸하시고 가까이하는 자는 복을 주심이 확실합니다.

우리 신앙과 마음에는 잘못된 선입견과 불신의 바위처럼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규례와 법도로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의 힘은 그곳에서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싸움닭은 위용 있게 보이려고 깃털을 세우는데 마귀도 그렇습니다.

현지로 출국하는 어느 선교사님은 “환율이 바닥이라서 선교비가 줄어 걱정입니다.” 했습니다.

내가 뭐라 했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채우셔요.”

누구는 나라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 하나님이 흔드신 후에 다시 세우실 줄 믿습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했습니다.

 

여기에 근거가 있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결론) 우리도 승전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앞길의 장애를 두려워 말고 성도다움의 경건을 이룩하시며 주께 의탁하십시다.

염려도 옮겨지고 불안과 두려움도 버리지 못하면 장차 운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29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세상의 불확실과 나의 불신과 두려움은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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