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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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벤허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래서 인지 영화의 주제는 증오와 복수 같으나 실제는 십자가사랑이었습니다.
1) 사랑
영화에서는 여러 모양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벤허는 본래 존경받는 유력한 유대인이었지만 집안의 한 여성노예가 결혼한다니 자유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후 벤허는 모함을 받아 노예살이를 떠나면서 기진맥진 했을 때 누군가 준 물 한 모금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물 한 모금의 힘으로 살아서 로마군함의 뱃사공이 되었지만 침몰하는 군함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면서 장
군까지 살려냈습니다.
그 장군은 벤허를 양자로 입적했고 자유와 신분과 유산을 주었으니 사랑이 사랑으로 되돌아 온 셈입니다.
벤허가 후에는 자신을 모함한 옛 친구와의 결전을 위해 마차경주를 준비하는데 경주마들을 자식처럼 아끼면서 훈
련시키고 마침내 경주에서는 채찍을 쓰지 않고도 우승했습니다,
원수가 경주에서 채찍으로 말과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과 다른 기수들이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과는 대조되
었습니다,.내가 발견했다는 모습은 바로 이 폭력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는 마차경주에서 우승한 벤허가 가족을 찾는 사랑으로 바뀝니다.
망가진 가족은 나병환자가 되었고 그동안 가족을 돌보아준 인물은 자유를 받았던 옛 여성노예였으니 역시 사랑은
사랑을 낳았던 것입니다.
벤허는 마침 빌라도총독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골고다를 향하는 죄수들을 목격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쓰러진 한 죄수에게 벤허도 받았던 옛사랑처럼 물 한 모금을 건네는데,, 그는 예수그리스도였고 자
신에게 물을 준 그 청년이었습니다,
영화의 결론은 결국 여기서 구세주를 만나 가족 모두는 나병은 물론 속죄함을 받는 하나님사랑을 실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특성은 동일합니다.
부모의 자식사랑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심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함이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니라
세상의 위대한 사랑은 죄인을 살리고자 죄 없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나 같은” 죄인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은 역사에 공개된 사랑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큰 사랑입니다.
2) 우리들 사랑
우리들의 사랑은 어떤가요? 받을 사랑을 계수하는 지극히 편파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강도만난 자에게 취했던 모습이 자화상입니다.
실제 강도만나 거반 죽게된 자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의 죄를 속한다는 제사장도, 유대교의 먹물인 레위인도 외면했고, 오직 사람취급 받지 못한 여행자 사
마리아인만이 민족구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주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네 이웃이 누구냐?”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아닌가요?
그런데 여전합니다.
요나서가 교훈해줍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초월해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요나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는데,
민족주의에 빠진 요나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함보다 자기 뜻과 기분이 앞섰고,
사랑의 대상은 하찮은 박 넝쿨이었으며 볕 때문에 뜨거워서 힘든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 있다면서,, 하늘영광 비우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다면서,, 초월적이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선교는 하면서 일본선교는 외면하고, 자신의 교단군목은 지원하면서 타교단 군목은 안 하고, 밖으로 선교
는 한다면서 교회당에 오는 일은 싫어합니다.
이는 선교가 자신의 마음과 관계로 이루는 사역일 뿐,, 사랑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민족이나 총회나 교회가 우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선이고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겉으로 구분하는 편견을 초월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성도는 새 가치관과 질서로 재편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질서로 생각하며 생활하나요?
아는 것만큼 보이고 믿는 것만큼 생활하는데 무엇이 우선 인가요?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칠 때 하나님은 그를 폭풍으로 추격하셨습니다.
그때 제비 뽑힌 요나에게 불신자인 뱃사람들이 묻기를, “~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
며 어느 민족에게 속하였느냐” 하며 물었습니다.
불신인 이들은 사회적인 질서와 관심에 따라 물었는데 그들에게는 충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소명 받은 요나는 어때야 했을까요?
먼저 복음적이고 소명적인 질서로 답했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불신자와 같이 대답했으니,, 요나가 스스로를 입증한 것이니 알만 합니다.
욘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로라 하고
이 요나의 대답이 사실은 맞아도 진실은 틀렸습니다.
민족성이,, 먼저 나와서 “나는 히브리사람이요” 맞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가 먼저 나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또 틀렸고 거짓입니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 면 하나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됐고, 그는 바다가 아닌 니느웨에 있어야만 했습
니다.
결국 불순종해서 폭풍을 만났으니 하나님경외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거듭난 성도에게는,, 성숙할수록 세상이나 내가 아닌 주의 나라와 의가 우선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러므로 요나는 자신의 감정대로 멸망해야할 도성 니느웨가 회개하고 멸망되지 않았음에 하나님께 화가 났는데
이 역시 불신이고,, 화가 났음이 불신과 불충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실제는 하나님 뜻대로 회개하며 구원받은 니느웨를 보면서 기뻐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성도의 관심은 언제나 멸망할 도성이고 사람에게 구원의 연민이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요?
사람만이 그가 어떤 존재며 어떤 형편이든 하나님의 복사본이기에,, 원본을 경외한 나머지 복사본을 아끼며 지키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사랑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사랑은 이 하나님 뜻을 알고 이루고자 하는 일이요. 이웃 사랑은 나의 중심이 아닌, 하나님중심으
로 혈통과 지역을 초월해야 큰 사랑이 실현됩니다.
요즘 외국인노동자 보다는 이주노동자, 탈북자 보다는 북한이탈이주민 등을 사용합니다.
저들에게 ‘이주민’이라는 호칭으로 달라졌으니 이웃으로 맞이하는데 교회가 앞서야 합니다.
다이제스트지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시골 집에 며느리가 새로이 들어왔습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큰 바위가 볼품 사나워 신부는 남편에게 돌 좀 치워달라고 했는데,,남편은 아버지 때부터 있던 거
리며 피했습니다.
시아버지께 부탁했더니 남북전쟁 때부터 있던 거라며 빙산처럼 밑이 깊다면서 삼가를 권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고 며느리가 집 단장을 하면서 그 바위를 건드려보았더니 움직였기에 혼자서 파보았더니 깊이가 40쎈티가 고
작이었습니다.
결국 며느리가 혼자 파서 수레에 실어 마당 밖에 버렸습니다.
큰 바위와 함께 남자들이 가졌던 바위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빠진 것입니다.
결론) 우리 신앙에도 이런 모습이 많습니다.
전통입네 하면서 하나님과 무관한 모습들,,개혁입네 하면서 편리주의인 것들만 붙잡은 모습들,,봉사합네 하면서 교
회의 일들은 외주를 주고,, 편함을 추구하는 모습 등,
또 교회가 크면 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자칫 성령의 감동과 운행이 없게 됩니다.
후배목사님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나 보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 담임목사님한테 기도해 달라” 고 했더니 그게 시스템 때문에 어렵다고 했던 일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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