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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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사마리아여인과의 만남은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주님은 그녀와 그녀의 동네사람들에게 전도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예배에 관한 계시도 확실히 해주셨습니다.
1) 예배
예배가 무엇인가요?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 남이
라
사람들은 대체로 예배를 모릅니다.
아니 예배대상자도 모르고 예배자도 모르고 따라서 예배도 모릅니다.
그냥 예배라 말하며 예배당에 앉아있으면 예배인줄 아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예배 같은 모임이 있고 참예배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아시나요? 알아야 합니다.
예배자가 만든 예배는 사람중심이므로 비슷해도 다릅니다.
그러나 참 예배는 한 분이신 하나님이 언제나 동일하셔서 계시해주신 그대로의 예배입니다.
그럼, 다시 반복해 봅시다.
예배가 무엇인가요?
예배당 안에서의 신앙고백과 찬송과 설교와 헌금이 있는 의식을 말하나요?
맞습니다.
그러나 참 예배는 일상의 모든 삶에서 성령을 따르고 진리로 사는 모든 삶입니다.
예배 날과 예배시간만이 아닌,,전체적인 삶인데 성령과 동행하는 일들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그 성령을 따르면 진리로 인도 받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일도 훈련되어야 하고 생활화 되어야 됩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경북 안동은 여러 면으로 전통문화가 숨 쉬는 고장입니다.
이곳에서는 장승 만드는 장인을 장승장이로 불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남녀장승 한 쌍을 만드는데 3일이 걸린답니다.
그런데 그 날 동안은 오직 마음을 집중해서 만든다고 했기에,,예배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장승이 전통문화라면 전통문화이고 우상이면 우상인데,, 장승장이도 좋은 장승 만들기에 이렇다면 살아계신 하나
님께 예배하는 성도는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전중심으로 여늬 유대인처럼 예배하셨지만 성령을 받으신 후부터는 삶이셨고, 마침내 그 최고요,
최선의 예배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산 제물로 하나님께 순종으로 드린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누구와 예배했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에 집중했느냐 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을 집중해야 합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누가 그랬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배해야 아이도 예배훈련이 돼서 좋은데,, 예배집중이 어려워서 비대면으로 집중하며 드린다
고,,그러므로 이는 훌륭한 부담이고 처신인 줄 믿습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 예배자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예배의 자격자이고 예배할 수 있는 특권자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성도는 주님의 의를 갖고 하나님영광의 임재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표면적으로 할례 받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만이 때를 따라 동물을 갖고 제사장에게 나아갔고 성전 뜰 안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혈통과 빈부귀천을 초월한 주 믿는 성도입니다.
이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고요,
영생이 있어 죽음저편의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 자녀된 신분이 생생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예배는 언제나 이 감사와 감격과 기쁨의 종합 셋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자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는 환희가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이런 성향이 없습니다.
되레 예배자를 비방하거나 예배를 구경하기 일 수여서 불신자는 참석을 삼가해야 맞습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나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릴 때 울고 있는 불신자들을 밖으로 내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예배 집례자는 목사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 개개인,,모두입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세우신 나라임을 각성하고 공연이나 내 취향을 맞추기 보다는 예배,,
예배대상을 숭모해야 맞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 예배에 대한 준비와 기대가 있고,,설교도 들리게 되며,,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서 역동함도 실감
되어 하나님과의 비밀과 추억이 만들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죄성에 가까운 분위기를 찾게 되고 감각적인 것을 의존하게 됩니다.
이는 살았으나 죽은 믿음에 가깝고 따라서 예배 같으나 공연인 것입니다.
서양음악의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타안 바흐(1665~1750) 는 어릴 때부터 가정사가 불행해서 형네가정에서 얹혀
살아야 했습니다.
결혼해서 일곱 자녀를 낳고 셋을 잃었는데 아내도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르간 연주자로, 칸타타작곡가로 왕성히 활동하며 열심히 살았으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고 노년에는 실명과
뇌출혈로 고통을 겪다 쓸쓸히 죽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인생은 너무 고단했고 많은 아픔으로 가득했어도 놀랍게도 그의 악보에는 S,D,G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를 적어 놓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자로 사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말씀처럼 찾아주셔서 결국19~20세기 바흐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어 사후
에 인정받는 인물이 된 줄 믿습니다.
우리는 자꾸 기교나 기술적인 예배자가 되려 하는데 이는 인간적인 생각인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령과 진리인 만큼 진실, 참, 눈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갱신은 무얼 빼거나 넣는 일 보다 예배자의 심령의 변화가 으뜸인 줄 믿습니다.
3) 예배대상
예배의 대상은 언제나 삼위일체하나님 한 분만입니다.
예수님모친마리아도, 사도바울과 제자들도 아니고 사람들이 세워 논 성자도 아닙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찬송에 계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이십니다.
예배의 내용은, 그 분의 살아계심부터 섭리, 창조와 우리의 구원과 인도와 다스림,,능력과 지혜, 사랑과 자비 등의
모든 성품도 해당됩니다.
풍성한 예배가 되고 바른 예배자가 되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아는 것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중이었던 북한군이 포로가 되었기에 몇몇 정보가 뉴스를 탔습니다.
이들은 참전인 줄 모르고 전장에 왔고,, 포로가 되면 김정은장군 만세를 부르며 자결한답니다.
결국 이들은 북한이나 전장이나 어디에 있든 세뇌당한 불쌍한 군인들이라는 반증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뇌당한 불쌍한 신자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 아닌 교주를 예배하고, 성령과 진리는 자유를 주시는데 반면 경직을 당하고 등,
이단이고 사이비인 것입니다.
이런 분별력은 성령을 받아야만 오는 지혜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이 주님을 알아 가는데 처음에는 유대인 청년,,그리고 선지자 마지막으로는 메시야였으니 이성에서
지성으로 옮겨간 것으로 성령의 변화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사람들 만남이 부끄럽고 괴로워 한낮에 물을 길러 왔던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뛰쳐 들어
가 외침은 무슨 용기인가요?
낮술이 아닌 성령의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그 동네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집에서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무슨 의지였을까요? 나중에 그들은
주님을 믿고 더 말씀 듣기를 원하여 주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 예배는 성도로서는 주님처럼 선교적인 삶입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입니다.
결론)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고 만져지는 건물이나 의식에 집착하는 일은 부실한 신앙입니다.
주일만이 아닌 평일에도 꼭 예배당만이 아닌 주 안에서 늘 하나님께 향하고 동행하기 위한 경건이 있어야 참 예배
이며 예배자입니다,.이들은 꼭 하나님이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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