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주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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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면서 땀과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눈물의 의미는 때마다 다릅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웃으신 적은 없고 우신 적이 3번 기록되었습니다.
지금의 나사로의 죽음과 예루살렘을 보시면서와 마지막 겟세마네동산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고통스런 십자가위에서조차 우시지 않으셨습니다.
1) 주님의 눈물
나사로 집을 찾으셨던 주님이 흘리신 눈물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적인 눈물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
쌍히 여기사
왜 비통하셨을까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님의 MBTI는 무엇일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주님은 신성과 인성이 신비롭게 균형을 이루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피곤하심, 목마르심 그리고 배고픈 군중과 아픈 환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음은,,
비통과 함께 눈물 흘리심이 참인간이심을 증명합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더라”
찢어지는 슬픔과 아픔을 3단어의 짧은 문장으로 기록되었지만 큰 진실이고 감동입니다.
우리의 정서는 최면과 겉치레문화에 전통적이라서 남자가 울면 약한 것으로 치부하고, 특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게 잘못했다고 하면 체면이 손상되는 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 보니 눈물도, 웃음도 억지가 많고 어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흘리신 눈물은 백 마디 말이나 큰절 보다는 진실된 동정이요, 위로요, 인간적인 공감인 줄 믿습니
다.
개인적으로 수십 년 전의 일을 기억하면 여전히 웃음이 나는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상을 치르는데 두 이모가 오셔서 들어오자마자 “에고에고” 하시면서 곡을 했었습니다.
이런 곡을 처음 접했는데,,곧 일어나서는 “얘,, 배고프다, 밥 좀 주라” 하셨기에,,
상주인 나는 아내와 함께 웃었습니다.
이는 겉치레인사였고, 과도한 격식이었으며 성도인 우리에게 맞지도 않는 문화였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곡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의 전통에도 있었습니다.
상가에서 곡이 끊어지지 않도록 크고 슬프게 잘 울어주는 전문가였습니다.
이름하여 ‘곡비’ 인데 잘 울어 주면 고인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지 않게 된다는 미신 탓으로 이들을 불렀던 이들
은 주로 왕족이나 양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물은 죽은 나사로를 위함이 아니요, 남겨진 산자를 위하신 사랑의 위로였던 것입니다.
2) 눈물의 효과
흔히 거짓의 가짜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합니다.
악어가 포식자로서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지만 실제 그때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입니다.
자연눈물과 인공눈물은 함량에도 차이가 있어 인공눈물은 각막염을 일으킵니다.
또 진짜눈물과 가짜눈물과의 절대적인 차이는 효과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진짜처럼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해도 가짜눈물에는 감동이라는 효과가 없습니다.
눈물은 희노애락 감정의 최절정에서 터지는 인격의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눈물은 보석 같고 진주 같은 줄 믿습니다.
어미 잃은 새끼낙타는 다른 암컷의 젖으로 키웁니다.
그런데 암컷이 다른 새끼에게 젖을 그냥 내주질 않습니다.
한 신기한 방법이 있습니다.
젖을 줄만한 암컷 낙타에게 악사가 구슬픈 노래를 연주해서 들려줍니다.
이때 암컷 낙타에게서 눈물이 흐르면 그 새끼를 받아드릴 징조가 되어 마침내 젖을 내줍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암컷낙타 앞에서 악사가 연주하는 모습과 구슬픈 가락을,, 그리고 그 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음악이 암컷
낙타의 동정을 유발시킨 것인데 어떤 말이나 채찍이나 먹이 보다 음악이 월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컷낙타를 움직인 것은 감동이고 음악은 방편인 것입니다,
성도에게 절대적 필요요소는 무엇인가요?
감동 있는 주님의 눈물 같은 진짜 눈물이야 말로 하나님선물인 줄 믿습니다.
죄의 대한 통회, 이웃에 대한 동정, 감사의 눈물,, 그리고 눈물이 있는 사과 등,
사람을 웅변이나 논리로는 선동은 해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짜 눈물은 하나님의 진노도 멈추게 하는 줄 믿습니다.
왕하20:2~3)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
더라
그렇다면 진짜 눈물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할까요? 아닙니다.
어머니의 눈물호소에 판사가 자식에게 새 기회를 주고,
눈물의 기도가 탕자 어거스틴이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낙타도 눈물을 흘린 후에야 남의 새끼에게 온정을 베풀고 젖을 물리는데,,
왜 변화가 없나요? 많습니다.
3) 나의 눈물
여러분은 언제 주님과 같고 낙타와 같은 진짜 눈물을 흘려보았나요?
성도에게는 이미 눈물이 허락되고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
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울라” 하심은 세상은 희락만 구하고 교회도 눈물이 마르고 있어서입니다.
이런 현상은 크고, 좋고, 많고, 빛나야만 주님이 함께하시는 표상으로 여기기 시작한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득세
한 후부터 두드러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눈물이 눈물답게 흐르기 위해서는 비통함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33절) ~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7절)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
라
38절)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주님의 비통에는 마리아를 향한 동정과, 죽음 앞에서도 냉소적인 유대인들을 향한 분노와, 죄로 말미암는 죽음의
원수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비통은 관심의 안목이고 진심어린 사랑입니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과잉의 시대와 분주한 몸과 무관심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천국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형로봇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사람을 닮고,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영혼 없는 첨단 기계라는 사실입니다.
설교, 상담, 진료, 기도,, 위로,, 시,, 소설, 번역 등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진실이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가 사람을 닮지만 훗날 사람이 기계를 담아 영혼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믿음이 없고, 마음이 차겁고, 눈물이 마름이 아닐까요?
결론) 그러나 비통이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셨던 주님은 달랐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령하셨습니다.
창조 이래 죽은 자를 향한 이런 외침은 없었습니다,
나사로가 베옷을 동인 체 나오므로 주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증명하셨습니다.
이 위엄은 훗날 주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에게도 확실한 보장이 된 줄 믿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처럼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병 들어서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고 건강하도록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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