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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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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8-10 07:55 조회 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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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주님의 외침이 종종 등장합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큰 소리로 외치나요?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사람 많은 큰 거리와 성전에서 외치신 줄 믿습니다.

 

1) 때를 깨우치심

며칠 전 젊은 부인들의 얘기를 스쳐들었습니다.

“자연의 이치가 신기해요, 어떻게 절기에 맞추어 기온이 떨어져요” 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창문 열고 자던 첫날인데 매미가 시끄러워 한 밤중에 깼습니다.

매미를 쫒는다며 베란다창문을 쿵쿵댔더니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아,, 매미가 알아들었구나 했는데,,,웬걸,,곧 비가 내렸습니다.

이런 곤충을 미물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첨단 일기예보기기였습니다.

이런 매미, 자신의 때를 알아 일제히 울고 또는 일제히 삶을 멈추고 흔적을 감춥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니 제자들은 아니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는데도 진정한 유월절이 무엇인지,,유월절 어린

양이 누구인지 모른 체 전통적으로,,혹은 습관적으로 분주하며 되레 주님을 거부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뿔나실 만

했습니다.

구주 성탄절이 다가오면 어떤가요?

젊은이들은 놀 생각, 상인들은 물건 팔 생각,,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때 성도로서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러므로 이런 일은 여전한 줄 믿습니다.

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날씨와 강우량은 분별하면서 요즘 달라진 국제정세와 지진진동과 기후변화는 그저 늘 있는

정치와 자연의 변화로 치부할 뿐 세대를 측량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면 크게 “깨어라, 분별해라, 회개해라.” 하시며 외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외침은 바로 이런 답답함의 외침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곤충도 때를 아는데 사람은 세대든 개인의 종말이든 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요12:40) ~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오셨고 외치시는 만큼 듣고, 보고, 눈이 밝고,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못 보게 하시고 못 듣게 하신 후 또 주님을 보내셔서 “보라, 들으라.” 하셨나요?

하나님백성, 당신백성에 대한 ‘감별’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공개적으로,, 그리고 그 책임을 주님을 앞세워 ‘믿음’으로 심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

에 그를 심판하리라


2) 주님을 깨우치심

어느 덧 하랑이 동생이 밖을 좋아해서 수시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제는 내가 먼저 밖에 나가서 어미를 기다리는데 쓰레기를 버린 어미가 멀리서 “은호야” 하며 불렀더니 서투른 말

로 ‘어맘어마’ 하며 발을 놀았습니다.

이때 생각 난 구절이 있습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 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

닫지 못하는도다

 

주님의 공생애 3년은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이 훈련도 주님과 함께하는 문하생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일은 구원을 주시는 대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적인 제자들조차 주님을 몰랐으니 동떨어진 바리새인들은 어땠을까요?

마12:38~39)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 몇 사람이 와서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

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어떤 새로움 보다 천박한 믿음과 불신앙의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

그 핵심은 “나를” “나는” 이 강조된 4가지입니다.

 

* 나를 보고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보고 믿는 일이다.

* 빛으로 세상에 온 나를 믿는 자는 어두운 곳에 다니지 않는다.

* 나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지 않고 구원을 위하여 왔다.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내가 말해야 할 것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령하셨다.

그 대표구절을 꼽는다면,

요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한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종교는 투쟁을 말합니다.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향해서 투쟁할 것을 가르킵니다.

누군가 개종하면 추방과 박해할 것을 촉구해서 곤란케 합니다.

옛 유대교가 그랬고 지금의 사이비나 이단이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들의 교인들이 이탈한다면 공격을 감행합니다.

 

우상은 잘되는 것만 말합니다.

점쟁이들은 말을 들어 보십시오,,

열이면 열은 다 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안한 사람들은 점집을 찾는 것입니다.

 

철학은 깨달으라 합니다.

“인생이 뭐냐” “자아가 뭐냐” “죽음이 뭐냐 ” “신은 뭐냐,,” 등등,

여전히 묻고, 여전히 답을 찾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복음의 핵심인 주님을 말씀하고 나아가 하나님과 죄와 구원을 서슴없이 말씀합니다.

회개의 복음입니다.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분명한 메시지 아닌가요?

 

3) 심판과 구원

요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

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주변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당신의 죽음을 아셨고 그 날과 그 고통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심판과 구원이 아닌 모든 사람의 심판과 구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해가 되나요?

성경을 보십시오,

무엇을 말씀하고 있나요?

성경 첫 장부터 “정녕 죽으리라” 그리고 곧 “동물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누구에게 하셨나요?

첫사랑인 아담과 하와였고 마침내 이런 모형이 역사적으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와 역사의 주관자는 계신가요? 그렇다면 누구신가요?

태어나심부터 동정녀탄생으로 신비하게, 삶도 기적을 이루시고 그러나 가난하게 사신 주님은 누구신가요?

주님이 그처럼 목소리를 크게 외치신 이유는 누구를 위함인가요?

최근 점포마다 붙인 글이 있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 사용점포” 누구를 위한 안내 글일까요?

여기에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민생거시기 가능, 민지 가능, 나랏돈 가능, 대통령돈 가능, 그거 가능, 인생역전 불가능,

 

주님은 마침내 부활하셨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모습이 주님의 오심의 목적이고, 모든 이적의 목적이었고, 지금도 크게 외치신 목적입니다.

 

결론) 세상은 이타적이면 바보라고 합니다.

이런 정신세계이고 보니 배려가 없어서 점점 살기가 어렵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리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새 성품이 심겨졌기 때문이며 복음에 관한 사도적 열정과 사도적 고난을 이룰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세대와 이 사람들과 살면서 안전하다, 안정되다, 부럽다, 라고 한다면 곤란합니다.

실제는 속상하고 답답하고 울고 싶어야 합니다.

이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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