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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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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8-17 08:14 조회 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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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전도하는 여인이 있었기에 다가가서 전도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여인은 “유월절을 지키면 재앙이 그친다.”며 전도지를 건넸는데 거짓을 믿는 이단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현혹과 거짓된 교훈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많습니다.

 

1) 성경적 유월절

성경적 유월절은 1회적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애굽에서 출애굽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핵심은 절기가 아니라 대신 죽은 어린양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어린양은 희생은 주님이 실제의 십자가대속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외침이 그를 증명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유대교는 유월절을 지켰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는 믿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이신 주님과의 충돌이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 붙잡혀 죽으실 때는 실패 같았으나 3일 후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줄 믿습니다.

그 후 교회는 어떤 날을 지키는 일을 신앙의 본질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보혈의 능력이신 주님을 제치고, 유월절을 지키면 모든 재앙에서 건짐을 받는다는 부적 같은 신앙은

심각한 거짓말이고 또한 거짓 교훈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주님을 나의 희생양이요, 구원자로 믿을 때 재앙만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하나님 자녀된 신분과 영생도 받습니다.

또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장차 주님 계신 천국에 입성하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인도로 장차 될 일과 천상의 일을 본 사도요한이 기록한 계시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곳에서 주님을 뵙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계5:6) ~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리고 이 주님과 성도들과 새로운 생활이 “어린양혼인잔치”라고 기록했습니다.

천국생활은 주님과의 허니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 땅위에서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죽기 전에 만찬을 함께하시고, 발을 씻겨주신 일로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천국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사랑인줄 믿으십시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

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은 이 사랑을 위해서 율법아래의 사람으로 오셨고, 유월절 어린 양으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3일 동안 고난을

겪으시고, 마침내 유월절에 죽음을 이루시고, 다시 성경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죽으신 유월절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50년마다 큰 해방이 있는 희년이 겹치는 때였습니다.

요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라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2) 마귀의 활동

바다를 떠다니는 큰 배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모든 산업의 총집합체입니다.

그러므로 항공모함이나 우주선까지 만드는 국가라면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모든 세상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데 그 섭리가 얼마나 신묘한지요?

성경은 주님을 증명한 하나님의 계시라면, 과학은 그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서 성경을 확인시켜주는 지혜와 지식입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이상한 한 별빛을 보고 “유대 땅에 왕이 탄생하셨구나.” 해서 먼 길을 찾아 경배하러 왔습니다.

당시 유대의 박사들은 이 탄생을 몰랐으니 지혜와 지식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그 별의 빛이 동방박사들에게 정확이 미쳤다가 떠났고,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태양이 멈추고 또는 뒤로 물러난 일들이 있었습니다.

큰 사건인데,, 주변에 어떤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미국나사의 학자들이 이 일이 사실임을 발견해서 책에도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현상은 있었으나 물리작용이 없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위력인가요?

 

비슷하게는 약에는 온갖 성분이 사용됩니다.

좋은 성분만이 약이 되질 않아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반대되는 성분도 약이 되는데 문제는 함량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가 그렇습니다.

성도를 위한 사랑이고 구원이지만 온갖 것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이 태어나심과 돌아가심에는 임신과 돌봄과 배반과 팔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용도가 요셉과 마리아였고, 가롯 유다

였던 것입니다.

이 일은 즉흥적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인 만큼 영원 전이었습니다.

문제는 요셉과 마리아와 달리 가롯유다는 믿음 없는 자가 되었기에 마귀에게 걸린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러므로 가롯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만큼 자기 관리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돈을 관리하면서 돈을 훔쳤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한 듯했지만 훔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이런 가롯유다를 주님은 회개를 기다리셨으나 그렇지 않아 마침내 개탄하셨습니다.

막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가롯유다는 잘못된 사랑이, 자기 사랑과 돈 사랑으로 마귀의 밥이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덕이고, 밥이고, 힘인데 문제는 사랑할 것을 사랑해야 하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3) 사탄의 출현

주님이 제자에게 배반당하시고 돌아가심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가롯유다의 배반, 마귀의 활동, 그리고 사탄의 등

장도 있었습니다.

물론 못 박으라며 외친 군중들, 정의롭지 않게 재판한 정치적 왕들, 주님을 거부한 제사장들,

오늘 성경에는 다른 성경에는 없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마귀와 사탄을 구별해서 기록했습니다.

실제 마귀는 헬라어이고, 사탄은 히브리어입니다.

우리는 마귀는 한문이고 사탄은 영어로 쓸 수 있기에 둘이 같다고 여깁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중국어성경도 이 둘을 구별했고,

원어성경도 요한복음과 같이 마귀와 사탄으로 구별되어 기록되었기에,, 본뜻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마귀 사탄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마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

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가복음은, 앞서 언급한,, “태어나지 않았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라” 였습니다.

누가복음은 사탄이라 했습니다.

22:3) 가롯인 중의 하나인 가롯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마귀와 사탄 그리고 귀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가롯유다가 진작에 배반했었기에 “마귀가 벌써”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마귀는 사탄의 거슬리고 대적하는 모든 불법적인 활동들이라면 사탄은 그 주체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도 인격을 부여하면 사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은 타락한 영적인 존재들로서 잡다한 마귀 짓을 하는 사탄의 졸개들입니다.

 

세상은 이런 영적인 영역은 모르기에 상상이나 뭉그트려서 말하곤 합니다.

그야말로 소설이고 허황된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분명하고 확실하며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해야 진리가 드러납니

다.

 

결론) 주님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불변의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서 시작됩니다.

죽으심, 장사되심, 부활하심, 40여 일 동안 함께하심, 그리고 승천하심 등은 우리를 위한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으로 인생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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