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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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윤이가 고모네 아파트형들이 끼어주어 개구리와 잠자리 잡으며 놀았다면서 좋아했습니다.
은호는 사촌형 다윤이가 오면 따라 하기 바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우는데 선두가 중요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1) 주님과 제자들
주님과 제자들 간에는 선배라는 중간이 없었습니다.
가르치시는 주님도 힘드셨고 배우는 제자들도 힘들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선생이 주님이셨기에 마침내 천국과 믿음과 사랑과 전도를 잘 배워 주님이 하실 일들을 잘 감당하였
습니다.
주님은 3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특별히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 본을 보이셨습니다.
기도도 본을 보이셨고, 이방사람들까지 사랑하며 전도하심도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신 것이 있으셨습니다.
* 성찬식인데,, 주님은 자신을 기념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떡은 고난당하여 찢기운 살로써 죄의 세력으로 맘미암는 고통을.
포도주는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의 값으로 희생한 자신의 생명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찬식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많거나 대저 무거운 계명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계명인데 혹 못 지켜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너
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일리라
* 부활하신 후 성령을 주셨고 또 주님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잠언의 22장4절의 말씀과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는 복인데 실제 이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다만 누구는 하나. 더러는 둘, 혹은 셋을 받기도 할 뿐입니다.
겸손과 경외함의 분복이라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그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되리라
* 선교라는 비젼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막16:1)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2) 세족식
주님은 세상 떠날 때가 되시자 많이 심란하시고 분주하셨습니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나는 엄마가 반찬을 준비하시고, 메모를 남기고, 집안정리까지 다 하시는 심정 같습니다.
그러면서 세족을 하시면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요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
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성도들이 착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주기도문과 세족식은 꼭 해야 하는 일로 아는데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나 성경적일 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주기도문도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모범입니다.
여기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넣고 빼야 할 것은 자유입니다.
세족도 그렇습니다.
유대 땅에서 발 씻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있고 누구나 해야 할 일상입니다.
가나 잔치집의 돌항아리의 물이 이런 용도였고, 또 하인들의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서로 섬길 것을 가르치시면서 본을 보이셨을 뿐 꼭 이대로 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겸손한 주님의 사람들답게,,양보하며 섬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적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클수록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끼리 재산분쟁으로 다투는 일은 듣기에도 안타깝습니다.
한 선교사님 오셨기에 식사 후 자연 사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네는 장모님댁에서 얹혀 사는데 사모가 장모님을 간병하니 그 집이 사모의 명의로 아내의 3자매들이 옮겨
주었다고,, 장모님은 산과 논도 있어서 매년 돈이 들어와 모여 있는데 장모님이 돌아가시면 자매들이 분배할 것이
라고,,앞서 다른 집은 친손자에게 넘겨주어서 다른 자매들이 불편했다고,,
자신의 돌아가신 새 엄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분이라 돌아가실 때까지 친척들을 저주했고, 친딸마져도 애증
을 가진 엄마였다고,,
사람들 마음 마음에 무엇이 많나요? 원통함입니다.
말세에는 이 원통함이 너무 많아 이 원통을 해소하고 다스리는 전문가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답은 딱 하나입니다.
종처럼 먼저 상대방을 발을 씻겨주는 일입니다.
정말 큰 자가 누군가요? 체격이나 재산이나 나이나 학력인가요?
진짜는 겸손한 자입니다.
상한 마음과 상한 관계는 내가 먼저 겸손하면 되고,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주면 됩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세에 가장 희귀한 것이 무엇인가요? 사랑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하면 문제는 풀립니다.
하님님 앞에 기도가 막히지 않는 삶이 진정한 경건인 줄 믿습니다.
3) 복이 있으리라
어떤 복이든 복은 그냥 떨어지지 않습니다.
행할 때,, 특별히 세족에 관한 이 섬김의 겸손,, 사랑의 섬김은 더욱 그렇습니다.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원통함이 많은 데는 고소고발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는 유감시대입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오기에 사납거나 불안 증세를 보입니다.
우리는 너무 과거 지향적으로 삽니다.
성도의 삶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물질에 집착되어서 구속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물질의 속박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가롯유다가 이 일로 마귀에게 잡혔던 것입니다.
부자가 되었나요? 잘 살았나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없는데 어찌 잘 살까요?
사람은 정의나 의리를 따르고, 특히 성도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피곤하고 돈이 들더라도 핑계치 말아야 합니다.
방탕한 사람은 제멋대로의 사람이고, 무모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푼 특성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아버지를 떠나 살던 탕자가 그랬습니다.
이때의 방탕함을 프레디걸(prdigal)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돌아온 그 아들을 받아주셨습니다.
용서하시고 아낌없이 다 주셨으니 그 아버지도 프레디갈이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결론) 우리가 주님께 한 번만이라도 프래디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는 약함, 착함, 주변성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연약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은혜를 의지합니다.
착함이란 자기유익대신 남을 위한 희생을 말합니다.
주변성이란 사회나 국가의 중심적이기 보다는 주변에 머물며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변두리지향입니다.
광장에서의 목소리를 높임보다는 침묵의 기도로, 또는 음지에서의 섬김과 나눔에 만족을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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