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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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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09-21 08:26 조회 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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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길을 가는데 젊은 여성이 배꼽만 보이는 정장 차림의 옷을 입고 당당히 갔습니다.

스쳐 생각하기를 “나도 그래 볼까“ 했습니다.

내가 한다면 말이 많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남자들은 덥다면서 상의를 벗거나,,여성들은 잠옷을 입고 거리를 할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 자기 멋으로 자유라는 의식에서 온 것입니다.

이런 차림에 대해서 사람마다 의견 있고 말도 많을 수 있어 국가가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느 분야든 있습니다.

 

1) 편견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 / 문정희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얼굴에 눈이 한 개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캄캄한 절벽이다.

어디로 갔을까

내 한쪽 눈

신이 사람을 만들 때

가장 정성을 들였을 것 같다는 눈

나 역시 눈과 눈물을 유난히 사랑했었다.

 

슬플 때, 슬퍼서 아름다울 때

오른 쪽 눈이 눈물을 흘리면

왼쪽 눈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제 희망을 허망이라 읽으면 어떻게 하나

한쪽에만 눈이 달린 내가

두 눈 가진 너를 보고 장애자라 할 것 같다.

부패한 수족관 같은 tv뉴스 화면에서

한 눈 가진 사람과 두 눈 가진 사람이

서로들 병신이라 우기고 있다.

나는 울었다.

그런데 내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

좌파도 우파도 아닌 내 한쪽 눈

어디로 갔을까

내 눈물을 어디에다 두나

 

최근 들어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적인 안목을 말합니다.

이 말이 고사성어도 아닌데 표준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일상어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인데 같은 사안을 이처럼 다르게 판단하고 평가한다면 다양성을 떠나 심각한 편견

과 오류의 시대를 이룹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희망을 허망으로 읽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혼란스럽지 않나요?

그렇다면 전 세계의 전 민족을 놓고 본다면 이 다름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대마초는 우리나라에서는 처벌해도 태국은 합법입니다.

무엇이 이처럼 만들었을까요? 문화의 차이라지만 실제는 안목과 정의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에게 저마의 다른 정의가 작용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흔들리면 부정부패가 옵니다.

전3:16} 재판 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사람이 법관이고 법정이 세상에 속했기 때문이라지만 근본은 공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공의는 진리이며 살아계시고 참되시고 산자와 죽은 자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가 없으니 진리가 흔들리고 정의는 저마다여서 객관적으로 죄를 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터위에 신앙이든 윤리든 삶을 건축해야 됩니다.

 

2) 진리의 영

주님은 이 진리를 보혜사성령으로 올바르게 제정하셨습니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책망)하시리라

성령은 보혜사이시지만 진리의 영이신 것입니다.

 

첫째는 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다.

9절/ 세상이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우리는 사람을 죽이고, 속이고, 음란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등의 윤리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죄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불신이 하나님께 죄입니다.

 

그 둘째는 윤리의 변화입니다.

10절/ 세상이 의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기 때

문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그러므로 성령으로 언제나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

 

우리의 윤리는 도덕으로 평가를 합니다.

지금껏 사람만 의식했다면 이제는 CCTV를 의식하고 사는 만큼 외식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진짜 도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식이고 그 윤리는 선함입니다.

 

그 셋째는 심판에 대한 변화입니다,

11절/ 세상이 심판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현재완료형입니다.

죄와 죽음을 지배하는 마귀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이미 심판 받은 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 후 심판이 없다고,, 아니 지옥 자체가 없다고 믿습니다.

이는 불신이고, 세상의 경향을 따라 죽으면 끝인 줄 아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히9:27)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중에 진리의 보혜사인 성령께서 내게 죄를, 의를, 심판을 바로 깨우쳐 믿게 하심도 믿어야 합니다.

 

연길의 동역자는 휴대전화기에 좋은 kbs 다큐를 담아 북한에 가면 친근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한답니다.

그 중 6,25한국전쟁은 남한이 북침한 것으로 알았는데 되레 북한이 남침한 것으로 역사왜곡을 깨우치기도 했답니

다.

이들은 결국 한 눈으로 보던 세상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신이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것 같다” 는 두 눈으로 여전히 자신만 보고,,죽어 가는 영혼에

대해서는 눈 감지 않았는지요?

아님 신앙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천국에서 한 쪽만 이해하지 않는지요?

균형이 있어야 하기에 신문도 보수와 진보를 함께 읽고, 성경도 인문학과 함께해야 좋습니다.

아님 내 믿음과 내 신앙은 금 같다면서 자기 의를 세울 수 있어 자칫 바리새인이 됩니다.

 

지식은 배워서 아는 힘입니다.

낫 놓고 기역자를 안다면 100점짜리 지식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배우지 않고도 발휘하는 힘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바다 깊은 곳에 샘물이 있음을,, 그리고 하늘의 별들이 자리가 있고 그 궤적이 있음을 말씀했습니다.

이 지혜로 이집트는 바벨론 문명을,, 중국은 도덕을,,그리스는 예술을,,로마는 제도를,,영국은 헌법을 만들었습니

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진리의 영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했고, 예배음악을, 종교개혁을,,청교도가 되었고,

또 후대의 경건한 사람들은 영국은 미국을, 미국은 아시아를,,그리고 조선에서 회개와 부흥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대한민국이 되어 세계에 만방에 주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론) 나와 여러분은 포도나무주님의 가지입니다.

이미 주님의 보혈로 깨끗해 졌으니 주님께 굳게 연합되어 많은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정치적 안목에만 편견 없는 두 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 믿는 신앙에서도 그렇습니다.

두 팔, 두 다리,, 두 귀는 두 눈으로 본 세상에서 균형 있게 살으라 하심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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