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동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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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하나님섭리대로 잡히시고 죽으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대제사장기도를 하시고 동산으로 이동하신 것입니다.
요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
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1) 기드론 시내와 감람산
이 동산을 겟세마네동산, 혹은 감람산이라고 하는데.. 겟세마네의 뜻은 당시의 언어로 ‘기름유착기’ 이고 감람산은
‘올리브 산’ 이라는 뜻입니다.
여기는 주님이 평소에 제자들과 자주 가신 곳이었기에 가롯유다도 알던 곳입니다.
주님은 이곳에서도 기도를 마지막으로 하셨고 이때 천사들이 나타나 힘을 더하여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맺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땠나요?
눅22:45~46)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이곳은 예루살렘과 함께 유서 깊은 곳입니다.
기드론 시내는,, ‘그늘, 흑암’ 의 뜻을 가진 계곡으로,, 옛 아사와 히시기야 왕은 이곳에서 우상을 불태웠던 곳이며
그밖에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지난 감람산은 높지 않은 동산인데,,
다윗의 3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신도 싣지 않고, 울면서 피난을 갔던 동산입
니다.
삼하15:30)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다윗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나요?
측근은 물론 원수를 보기에도 수치스러웠던 일입니다.
주변의 반응도 갈라져서 아들과 함께 반역한 자들이 있었고, 안타까움으로 자기 옷을 찢고 흙으로 머리에 덮어 쓰
고 다윗을 맞으러 온 후새라는 사람이 있었고, 반면 쫒아오면서 크게 저주하던 사울왕의 지파 시므이도 있었습니
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일에 침묵했었습니다.
아니 부하장수가 시므이를 죽이려 했을 때 되레 만류했었습니다.
삼하16:10) ~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
가 누구겠느냐
우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 때로는 다윗 같은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아님 시므이 처럼 그 이웃이 되기도 하는데 어떻
게 행동하며 처신할까요?
대체로 한결 같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신앙보다 수지타산 때문은 아닌가요?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그 인격과 삶 속에서 역사하는 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2) 내가 그니라
다윗의 후손인 주님은, 만왕의 왕이신 주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셨고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요18: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세상은 언제나 주님께 적대적이었고 따르는 무리 중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언제나 세상적이고 더불어 연대하고 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지간이었으나 예수님을 잡는 일에는 하나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18: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햇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 지라
비무장이신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데 이들의 무장된 모습을 보십시오.
비록 제자들도 있었다지만 이들은 제자들 보다 더 겁먹은 모습 아닌가요?
여기에 베드로가 처신은 빠르긴 했어도 하나님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요18:10~11)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 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 쪽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즘 같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즉시 체포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로라” 하심으로,
저들을 물리치시고 땅에 엎드러지게 할 수 있으셨지만 그 이상 발휘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순순히 따르셨는데 아버지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으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성경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여호와께 속한 일이기에 잠잠히 기다리라고,,
다윗도 기다렸을 때 원수와 원통함을 하나님께서 갚아주셨습니다.
주님도 부활과 승천으로 갚아 주셨고 훗날 저들을 심판하심으로 또 갚으실 줄 믿습니다.
지인 집사님의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집사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경찰대학 1기 출신이어서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미국과 국내대학교에서 박사를 학위를 2개를 마치고 미국에서 교
수와 미국회사의 중국법인장을 지냈고 지금도 그 명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가문은 유명 소주회사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회개하면서 봉천동에 교회당을 지어 헌당했었는데 훗날 땅값이 오르자 목사님 넷이 작
당하고 팔아서 개인화했답니다.
그러자 셋이 죽었고,, 나머지 한 명이 자기를 찾아와서 사실을 얘기하고 용서를 구했답니다.
우연일까요?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구원 보다 먼저 믿는 신앙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 심판에서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는 세상사는 동안에 어떤 모양이든 원수 갚는 사람은 아니어야 합니다.
되레 베풀며 용서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주님을 증언해야 맞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정의의 복수의 화신이 되어 베드로처럼 나서는 일은 주님을 욕되고 자신을 망치는 일인 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그니라”는 주님만의 “ 나는 나다” 라는 하나님이라는 선언이었지만,
성도는 “내가 그리스도이다” 라는 의미로써 “내가 그니라” 삶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관심
주님의 관심사는 딱 하나,,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았고 함께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주님다운 사랑이고 관심이었습니다.
요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
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라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
게 하려 함이러라
우리에게 이 세상은 기드론 시내와 건너편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과 같습니다.
삶이 깊고 어두워서 기드론 시내에서 살든,,아님 올리브가 있는 겟세마네이든,,나의 삶이 기름 짜는 착유기가 되었
다면 고달프고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금번 캄보디아에서 피의자로 체포되고 귀국한 청년들은 누군가의 자식들인데,, 잘못된 결정으로 그곳에서 남의 피
까지 짜내는 범죄살이를 해야 했었습니다.
결국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도 되었으니 올리브를 바랐지만 착유기만 되어 지팔지꼰이 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선한 목자 없이 산다고 하면서 고집 부렸다가 도둑을 만난 것이고, 또 포도나무가지가 되어 주
님께 붙어있으면 되는데 죄성에 매여 자꾸 이탈한 탓입니다.
아기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아기들이 조금 크니 독립적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보호자는 따라가면서 돌보는데 사랑이고 책임의 모습으로,, 주님을 봅니다.
이쯤해서 생각나는 게,,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크면 보고 배운대로 예쁜 말과 행동을 하는데 기쁨도 되지만 보람도 됩니다.
그제였습니다.
다윤이를 어린이 집에서 하원 시켜서 고모집에서 잠시 있다가 자기 집에 데려다 주는데,,십자가를 배웠기에 십자가
를 보면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십자가를 가리키며 교회 앞으로 가자는 것을 곧장 갔더니 울먹했습니다.
또 우리교회는 십자가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또 자기 집에 할머니가 올려다 주고,, 할머니가 간다고 하니 “ 할머니,,기도 안 해요? 기도하고 가세요.” 했답니다.
결론) 우리가 감람산에 있는 당시의 제자라면 어떨까요?
주님과 감람산에 함께 있을 것이고 주님이 기도하실 때 슬퍼도 자지 않을 것 같나요?
이 모든 것을 이기도록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신 줄 믿고 성령을 더욱 의지합시다.
제자들이 보혜사 성령을 받은 후와 나중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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