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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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한 투자가가 최근 주주서한으로 보낸 생애 마지막 추수감사메시지를 보았습니다.
1) 좋아진 삶 1
“ 나는 삶의 후반이 전반부 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탓하지 마세요.
조금이라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스스로 내 부고가 어떻게 쓰이길 바라는가? 생각하고, 그것에 맞게 살아가세요.
위대함은 돈이나 권력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남을 돕는 모든 작은 행동이 세상을 돕는 것입니다.
황금율은 본인이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라’ 입니다.”
누구일까요? 올해 말 최고 경영자자리에서 은퇴하는 95세의 워런 버핏입니다.
큰 재벌인데 메시지를 보면 그 흔한 돈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이웃과 주님이 있었습니다.
마침 국내뉴스에서는 세무서직원들이 고액세금체납자들의 집을 찾아 세금을 강제 징수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돈다발과 각종 귀금속이 많았기에 그 돈에서는 주님과 이웃은 안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유학을 시킨다니,,부러움과 고상함은커녕 야속함이 들어 너무 대조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그가 누구든지 생애 후반부가 전반부 보다 좋아질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3대 가는 부자가 없다” 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섬김과 나눔도 없고 오직 돈만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평안과 평화로 부르는 즐거운 찬송과 기쁨이 없게 됩니다,
다투는 여인과 큰집에 사는 삶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마른 떡을 먹으면서도 화목한 집과 같아야 합니다.
감사와 즐거움은 소유가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평화,,
죄사함 받았을 때의 하나님과의 화목함이고,,성령이 함께하시므로 기쁨이 샘솟는 현상입니다.
물론 마귀가 훼방하지만 믿음의 성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시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
을 송축할지어다
문은 이 쪽과 저 쪽의 경계입니다.
감사는 이런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그러나 감사를 못해 삶이 닫혔고 찬송이 없어 감사가 그치기를 반복한다면 어떨까요?
그 얼굴상은 몹쓸 상이고, 그 말에는 가시가 돋고,, 그 신앙은 가시밭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 삶은 자신이 만든 것인데 그럼에도 누굴 탓하고, 하나님섭리라며 근거 없이 말하곤 한다면 유감입니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합니다.
하루는 여는 아침에,,감사가 있어야 하고, 상황이 바뀔 때 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삶이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문제 앞에서 걱정하며 여기저기 전화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억지로라도 찬송함으로 감사한다면 얼마나
다른가요?
이 때 상황의 변화가 생기든지 아님 내가 변화되는 일들이 정녕 오기 때문입니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2) 좋아진 삶 2
둘째는 이웃들과의 평화입니다.
현대인들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움켜잡고 자기만 살겠다고 해서 다 못사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결국 혼자는 못살고 죽는 일이 벌어져 우리가 OECD 국가 중 자살이 1위랍니다.
또 30대 청년들이 양질의 취업을 못해 33만명이 그냥 쉰다니 청년실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더 어려웠던 옛날에는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품앗이가 그 증거입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 때 두레박을 썼는데 두레가 공동이라는 뜻으로 공동바가지입니다,
달라진 현대가 그 시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마음과 생각부터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전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워 줄지어
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 지 네기 알지 못함이니라
서양 속담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 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분산 투자하는 일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던지라” 는 뜻은 도로 찾는 의미가 아니라 “잊으라” 의 의미이기에,
위의 말씀은 분산투자가 아니라 나눔과 섬김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전만 생각하면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는데,,여기에는 주님의 절대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는 내가 정한 때가 아닌 때에 주님이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는 만큼 주님 때에 갚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만 갚으시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도 갚아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에는 이런 말씀의 경험이 많아야 좋습니다.
그럼에도 추수 때 수확이 없다고 하는 것은 뿌리지 않았다는 반증이 됩니다.
성도가 주변에서 “그는 완고한 자,,굳은자” 라 말을 듣는 일이 좋은가요?
3) 좋아진 삶 3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청년들을 향해서는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청년들이 돈 사랑에 미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세주의 사랑을 더욱 감사하게 하소서”
나대신 죽으신 하나님독생자인 예수님의 보혈의 원가를 아시나요?
안다면 그 분께 드리는 것과 그 분을 위해 사용하는 데 아까워하지 말고 오직 아쉬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재벌회장은 생전에 돈 사용하는데 몇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배우는데, 좋은 관계를 넓히는데, 건강을 위하는데 등,,
그러데 하나님을 모르는 회장이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라”하신 주님의 돈 사용 명령을 몰랐기에 이
웃과 복음에 대한 사용이 없었다가 죽기 전에 소떼를 몰고 북한을 찾았습니다.
언제고 세상에는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가 어디든지 넘칩니다.
성도인 내가 다 돌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된 책임이 여기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58:6~7)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
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
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위의 말씀은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않고, 감사가 위선이 아니며, 찬송이 억지가 아닌,,조건이 전제입니다.
성도는 초월적이고 관대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그분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문제와 땅의 물질 부족에 마음을 빼앗기질 않습니다.
오직 마음이 하나님께 있다면 문제 중에라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게 됩니다.
이 때 기적이나 응답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성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은 두려움과 불안이 많고, 고난과 고통이 심해서 맞서길 보다는 피하기 일 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궤계에 지는 일입니다.
이때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데 감사함이고, 기도며, 섬김과 나눔의 실천적 예배입니다.
특히 실천적 예배는 의전적 예배가 더 예배가 되게 하는데 절대적입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면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성숙하고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추수감사는 잔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열매를 보는 때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는 나는 괜찮은 듯하고, 남들도 좋게 평가해도 정확히는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내 눈은 착각이 있고 남의 말은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작년 보다 올해가 나아졌나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발달했나요?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고마운 사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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