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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예수 > 설교말씀

십자가에 달린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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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5-11-23 08:22 조회 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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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술자는 연장을 고치거나 아님 만들어서 사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탓과 원망과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수록 자신의 능력한계를 스스로 폭로하는 사람이 됩니다.

 

1) 전능자

목사인 저는 설교자로서 늘 설교가 부담스럽기에 공을 들이게 됩니다.

물론 그 부담이 일상에서는 관찰과 사색이지만 그 결과는 즐거움과 보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발견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붙잡히심부터 죽으심에 대한 일련이 과정들을 보면서 여러 군상들이 보였습니다.

나름의 기질과 직위에 따라 혹은 신앙에 따라 주님께 대한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통치에 그 사람은 없어도 그 역할은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도다.” 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전능자이시고 절대적 전지자이십니다.

주변의 벌레나 동물들을 잘 보신 적이 있나요?

생김과 기질을 보면 볼수록 그 할 바를 웅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극의 곰과 여우는 숲의 곰과 여우와 털부터 다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의인은 의로운 일에,, 악인은 악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돈 사랑했던 가롯인 유다는 주님을 파는 일에,,정치인인 빌라도총독은 주님을 무죄로 선포했으나 정치적 타협으로

는 못 박도록 했고, 한편 주님의 죄패에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쓰지 못하게 했으니 이 역시도 주님의 작용인 줄

믿습니다.

군병들은 어떤가요? 역시 명령대로 하는 움직이는 역할입니다.

영화나 연극에서는 조연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는 훌륭한 배우들이었습니다.

조연1, 2, 3은 겟세마네동산에서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조연 4, 5는 군인으로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아 한사람이 가졌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역할이었습니다.

요19: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그리고 주님 돌아가실 때 십자가 곁의 여인들,, 또 나중에 주님을 창으로 찌르는 군인 등,

많은 배역들이 더 있지만 실제는 주님을 주님 되게 하는데 동원되고 사용된 역할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기 배후의 세력을 모르고 세상 배후도 잘 모릅니다.

인본주의 일수록 분명해서 다 자기 결정이라고 믿고 “ 내가~ ” 와 “우리가~” 를 앞세웁니다.

그러나 “ 하늘의 하나님께서 웃으시리로다.”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부르심에 감사할 때 소명이 옵니다.

마리아가 예수탄생을 고지 받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했고,

사도 바울도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소명 받았을 때 “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려 하는데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착각 말 것은 하나님은 초월적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꼭 신자만이 아닌 불신자도 사용하시며, 또 특별한 민족만이 아닌 다른 민족도 부르시고, 사용하시며, 깨끗하게 하

시고, 구원하신다는 엄연한 사실에,, 우리는 크게 깊게 보는 믿음의 안목을 지녀야 신앙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요나가 자기 민족만의 구원을 생각했었기에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야 했었고, 베드로를 깨우친 책망은 사람이

아니라 새벽닭이었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교는 주님을 거부해서 죽였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만 좋다고 선호하지만 하나님은 단색이나 3~4가지 색연필이 아닌 모든 색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진 잔’ 도 좋은 선물로 여겨서 기대하고 고난도 은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동역자를 한국으로 유학하도록 권하고 여권을 만들어 준 사람은 그를 때리고 감옥에 쳐 넣었던 공안국장이

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북한 아이들을 조사하면서 도망가도록 암시를 준 사람들도 공안들이었고,

국경지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봐준 부대장은 동역자의 불신자친구였습니다.

반대로 탈북녀들을 팔아넘긴 인신매매자들도, 신고해서 현상금을 챙긴 이들도 같은 동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만물도 다 그처럼 평가하지만 오직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속을 보시고,, 감

정이나 이성이 아닌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이 안목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압니다.

거듭나야 하기에,

 

2) 벌거숭이 주님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지는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다래기를 처음 마취 없이 시술하는데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취가 있었는데 시술 후 의사와 간호사는 내게 “참느냐고 수고했어요”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 있는 몸에 못질을 당했고 십자가를 세웠을 때 그 못에 온 몸의 체중이 실려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달린 체 죽어 가는데 군인들이 강도들의 다리를 꺾은 데 비해 주님께는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은

먼저 운명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배후의 하나님 섭리인 줄 믿습니다.

요19: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이런 십자가에서 다 옷 벗김을 당해 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형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수치를 주는 로마의 최고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처형을 단심으로 끝내는 자체가 웃깁니다.

그리고 죄 없다고 했으나 민란이 일어나니 번복하고 강도 대신 내어준 그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악법도 법이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아들을 집행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장차 심판장으로서 그들을 심판하실 줄 믿습니다.

요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들 보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에 한 진실이 있습니다.

벌거숭이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온전한 대속물이셨고,

온전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이셨고 성전이셨습니다.

희생 제물로써 자신의 생명과 옷 그리고 피와 물까지 다 드리며 희생하셨고,

대제사장만이 입었던 에봇처럼 통으로 짠 옷이 주님께 있었기에 대제사장과 성전의 중거물이 됩니다.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로다 ” (출28:31~32)

히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

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벌거숭이로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요?

장례에만 다녀와도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의 입히는 모습만 보아도 잔상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하물며 십자가에 벌거숭이로 달린 강도와 예수님,,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의 말씀을 인용해서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결론)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과 이러한 주님이 지금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받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주셔서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육체로 계시면서 모든 연약함을 경험하시고 우리를 돕는 대제사장으로 함께 계신 만큼

그를 힘입어 당당히 하나님께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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