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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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누가 곁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수조영남씨는 자기 임종을 지키는 여성에게 재산의 3분지 1을 준다고 했습니다.
1) 주님의 곁에는,
주님은 평생 가난하게 사셨기에 머리 둘 곳이 없으셨어도 가난한 제자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는데 제자들 보다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
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이들이 누군가요?
막15:40~41)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
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마27:56) ~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다의 아들들의 (야고보와 요한) 어머니도(마리아) 있더라
애통이라는 뜻의 5명의 마리아가 있었는데 5라는 숫자인 은혜의 뜻이기에,,
하나님의 애절한 구원의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어머니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
아 4명 등, 마태복음에서는 세베다의 아들들의 어머니(야고보와 요한) 1명과,,
이 마리아들은 특별히 주님과의 인척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후 어머니마리아와 이모된 마리아는 주님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람의 관계는 끝나 하나님
과의 관계로 이어진 줄 믿습니다.
이런 여성이 많은 모습을 보면 세상은 남성이 통치하는 세상 같지만 실상은 여성의 사랑과 희생이 밥이 되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 하심은 의미가 있습니다.
현대는 일하는 여성들로 인하여 인구감소와, 가정의 어머니 부재와, 자녀교육의 사랑이 빈곤이 왔다면 일하는 여성
보다는 아내와 어머니가 튼튼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2) 네 어머니라
그러므로 주님이 십자가 고통 중에서도 제자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이 괜한 일이 아니고 여성신앙의 본을 보
이신 줄 믿습니다.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
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
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기서 상상이 많습니다.
주님은 왜 동생들도 있을 텐데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을까요?
죽고 장사된 후 부활하실 때까지의 3일 동안도 아닌 어머니의 남은 세월을 부탁했을까요?
또 요한은 어떻게 즉시 모셨으며 마리아는 어떻게 순순히 그 집에 들어갔을까요?
모릅니다.
사실 상상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어머니가 서로 믿었으며, 또 요한을 같이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생명 끝 날에 서로 곁에 있었고, 어머니를 의탁했으며 마리아 역시 의탁하며 요한의 어머니와 살았
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 그런가요? 믿음은 신앙이며 삶인데,, 그 완성을 이루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메모해 놓고 가끔은 들여다보는 윤선도의 옛글이 있습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많은 사람들이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고 합니다.
불행이고,, 불행할 소리입니다.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도 밖이 아닌 안의,,그리고 나 세상 떠날 때 아쉬어 할 친구입니다.
흔히 인맥을 관리한다고 하는데 이는 큰일 날 소리입니다.
관리가 아니라 진실이고,, 사랑으로 우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돈 없어도 사람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럼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질서입니다.
현대의 극단적 자본주의는 이를 놓치고 있기에 불행한 독거와 고독사가 증가합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부인이 아픕니다.
장군 출신은 2년 동안 부인이 아파서 여전히 병원으로 매일 다닙니다.
기업임원 출신은 부인의 암 재발로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서 간병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일찍이 부인이 치매가 와서 7년 간 간병하다가 최근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며칠 전 다녀간 골프 프로인 친구는 부인이 섬망 증세가 와서 병원에 함께 입원했습니다.
몇 년 전 부인이 뇌진탕이 왔을 때 5개월 동안 간병하느냐고 이도 다 상해서 바꾸었는데 다시 이상이 왔습니다.
다들 부부가 관계가 건강하니 가정은 좋았고 성장한 자녀들도 잘살았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아프니 친구들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몸부터 유기적관계의 존재입니다.
어려서는 부모가 형제들을 키우고 어른이 돼서는 형제들과 부모공양을 하는 것입니다.
3) 으뜸의 관계
모든 면에서 잘 살길 바란다면 그 근본은 하나님과의 화목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고난과 고통의 삶을 마지막으로 신 포도주를 마신 후 “ 다 이루었다 ”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
혼이 떠나가심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 하신 건가요?
하나님과의 화목이고 이 믿음 따라 나머지는 설정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는 세상 살이가 맵고, 시고, 누구는 달디 달답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영혼이 떠나갑니다.
그 때 오직 혼자서 떠나냐? 곁에 남기고 떠나냐? 이 차이 뿐입니다.
결국 이 차이는 주님으로부터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은 구원의 성도는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는 평안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영혼이 떠나야 머리를 숙이는데 반해 성도는 주님처럼 그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는 성도는 가난해도 죽으면서 외롭지 않습니다.
아니 평상시에도 그렇습니다.
나사로가 그랬고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한 사람은 늘 죽음이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겁이 날까요?
주님의 십자가 대속은 이때를 위함입니다.
보험은 딱 한 번인 유사시를 위함이듯이,,
우리의 모든 날의 주님을 믿는 신앙은 이날 이때를 위함인 것입니다.
결론) 오늘 아침에 누가 글을 보냈습니다.
“ 익어간다는 건 기쁨과 아픔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아는 것,
(중략)
사랑한다는 건 손끝만 스쳐도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도 느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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