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에브라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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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세계정세를 보면 국가도 부강해야 되는 힘의 원리를 교훈 받습니다.
힘이 곧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 나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
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아주 큰 자가 아주 작은 곳에서 나온다는 예언입니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태어나는데 위 말씀은 마치 작은 샘물에서 고래가 나온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이 역사성취도 역시 하나님의 역사성취라서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힘으로 지배하고, 힘이 없으면 지배당하는 나라가 아니라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여서 그렇습니다.
힘의 지배는 결국 폭력과 복수를 낳는 반면 사랑은 평화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시의 가장 큰 나라인 앗수르가 아닌 작은 유대 땅, 그것도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장 작은 고
을인 베들레헴에서, 큰 가문의 장자가 아닌 잊혀진 다윗가문에서 목수아들로 갓난아기로 오셨던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었습니다.
이 둘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치열하게 싸웠기에 이삭은 하나님께 가서 여쭈었습니다.
그때의 하나님의 섭리가 어땠나요?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 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겠고”
하나님의 통치는 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있음을 대변하신 줄 믿습니다.
이 하나님나라가 기초된 곳이 가정입니다.
어릴수록 보호받으며 어른일수록 사랑으로 품어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윗층의 다윤이 같은 아기에게 과자값을 주었더니 며칠 후 그 부모가 과일을 갖고 왔습니다.
그 과일을 경비원과 청소원에게 나누었더니 이제는 청소원이 버섯을 문에 걸어놓았습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갑질이 없었고 배려만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고후12:10) ~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앞서 주님께서 “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배우라” 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서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종으로 섬기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기셨으니 실상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셨습니다,.
미5:2) ~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위의 모습은 사람의 힘과 명성,,세상조건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독특한 모습이고 하나님다운
방법이며 이며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장 연약한 곳에서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다윗가문의 혈통을 되살리는 사람 왕이 아니라 태초부터 존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미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까지 미치리라
그러므로 말구유에 계실 때 하늘의 천군천사가 찬송하며 하늘의 영광이 두루 비추인 줄 믿습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
이 갓난아기가 태어난 곳은 작아도 “베들레헴 에브라다”의 마구간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고, 에브라다는 히브리말로 베들레헴의 옛 이름인데 ‘열매 맺는’, ‘다산‘의 뜻입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두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유다지파의 땅과 스불론 지파의 땅(수19:15),
이 두 곳의 혼동을 막기 위해 두 지명을 함께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두 이름이 함께 쓰이면 ‘풍성한 열매’와 ‘양식의 집’ 이 되니 의미가 갑절이 됩니다.
이 지명의 의미로 오실 왕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오셨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이 왕은 영원한 목자요, 평강의 왕으로 다스리시니 영원한 국태민안이 됩니다.
미5: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
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들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절) ~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
져내시리라
여기에 차이가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궁들을 밟을 때” 와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이 차이를 아시나요?
주권자와 백성과의 차이로서 왕된 자신보다는 백성의 구원자요, 목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평강이 될 것이라”
평안을 만드시는 피스메이커가 아니라 평강자체이시기에 두려울 일이 전혀 없게 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 왕은 자신이 먼저 있고 나라와 백성이 있습니다.
아님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약속했지만 곧 돌변해서 군림자가 되고 약탈자가 됩니다.
이런 왕의 주는 평강은 자신의 궁궐에만 있고, 궁궐 밖에는 신음과 고통이 난무합니다.
얼마나 다른지요?
그러나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시리이다” 오직 백성을 위한 왕인 줄 믿습니다.
이 왕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오르실 때,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서 보내주셨고 장차 당신의 백
성인 성도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할 바가 있습니다.
야곱과 이삭이 복중에서부터 치열하게 싸웠던 그 싸움이 여전하다는 사실입니다.
힘으로 지배하려는 세상나라가 있고, 사랑으로 통일하려는 주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 둘의 전쟁, 두 민족의 전쟁, 영적전쟁입니다.
더 하고, 더하고, 더 크고, 더 많아지길 바라면서 전쟁하는 나라 그리고 그 배후의 왕,
반면 낮고, 작고, 비우고, 섬기려는 평강의 날 그리고 그 배후의 왕,
우리의 소속을 아시나요?
크게는 진화론과 창조론이고, 유물주의와 성경주의입니다.
유심히 세상을 보고 돌아가는 형상을 보십시오.
성경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람직한 일로써 주님이 여전한 왕이시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5절 “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까지 미치리라 ”
결론)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도 주님을 믿고 찾아와서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방박사들을 끝까지 보호하셔서 돌아가는 길에도 헤롯을 만나지 말 것을 인도하
셨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그들 보나 더 한 성경도 있고 역사적 사실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없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일인데 믿음 있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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