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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후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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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1-18 08:33 조회 5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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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성경대로 된 부활이었습니다,.

이 부활로서 믿는 자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왔고, 새로운 시작이 왔습니다.

부활하신 일요일은 주님의 날로 한 주간의 마침일이 아니라 시작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부활

부활은 말 그대로 다시 사는 삶입니다.

이 부활은 당시 주님께서 죽음이 있던 날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앞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들은 더 이상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마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들의 부활은 주님과 연합한 성도의 부활을 예고하는 줄 믿습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을 구체화된 줄도 믿습니다.

이들은 ‘성도’ 였고,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 에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영화로 치면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고, 본영화가 아니라 예고편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인류에게 출생 만큼이나 가장 위대하고 신비한 일입니다.

요즘 이 동네에는 이단들의 전도가 설치곤 합니다.

한 중년의 여성은 ‘고통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서 전도지를 건넸고,

또 한 남성은 초인종을 누르고는 “미래에 어떤 일이 있는 줄 아느냐”고 했습니다.

 

오늘을 살기도 버거운데 왜 이런 호기심을 앞세울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던 이들부터 이 영원의 떡을 찾다가 잘못 먹은 탓입니다.

그 시작은 아담과 하와였고,,그 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많은 가짜들이,, 참 떡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도 국가가 나서서 저들을 없애고자 할까요?

모든 피폐함을 주어서 그렇습니다.

 

뉴스를 보셨나요?

최근 ‘은하교’ 라는 사이비가 영생을 준다며 노인들의 돈을 수십억이나 갈취해서 잡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데 넘어가는 일이,, 기적입니다.

참 영생을 주는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며, 그 산 떡은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되레 자신을 주신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는데 여기에는 시쿤둥합니다.

 

이 설교를 구상하던 날에 눈길에는 염화칼슘이 뿌려져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눈 같으나 눈이 아닌,,먹이 같으나 먹이가 아닌,,새나 고양이가 먹으면 죽을 수 있는,, 그러나 새나 고양

이는 학교 교육을 배우지 않았어도,, 또 먹이가 없는 주린 날에도 먹지 않은 것을 볼 때 사람 보다 지혜로웠습니다.

이 지혜와 이 분별력을 사람은 있다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탓입니다.

죄가 잃게 했고 그 잃은 흔적에 죽음이 온 줄 믿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 부활의 믿음

그러므로 부활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망쳐 놓은 불순종의 그 삶을,, 그 죽음을,,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순종으로 되찾아 주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부활이고 그 결과는 영생입니다.

 

흔히 수학은 공식 보다는 이해력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같은 공식인데도 문제를 조금 비틀면 못합니다.

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어를 모르면 문해력이 떨어지고 문장력도 없게 됩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부터 마지막 요한계시록까지 누누이 강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반복된 하나님의 계시인데,,예수님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하심과 재림입니다.

문제는 이 주님의 일련의 사건들이 그냥 맹목적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조건 믿는다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막상 부활을 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리라)

만약 이들이 주님의 부활을 잘 믿었다면 어땠을까요?

죽음과 부활하심에 놀라지 않고,

최소한 내 죄로 죽으심이어서 “내 죄가 사함 받고 심판이 면제 받았으니” 감사하고,,

또 “내가 주님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었으니 내가 살았도다.” 하며 기쁘게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사는 날 동안에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구하기보다는,, 영으로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바라고 즐

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이 부활을,,그 의미를 깨달아 알았던 훗날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성도들과,, 많은 성도들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부활은 상징도 있지만 실제 사건입니다.

요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보니 부활의 흔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흔적이 있었습니다.

요2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이들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는 사실 확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무조건이 아니라 근거,,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후 이 부활은 내 신앙에 핵심이 됩니다.

성경대로 주님의 부활하심은 성도된 나를 위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 신앙이 이론화, 학문화 되었다면 실제화, 생활화, 인격화가 되어야 맞습니다.

 

3) 불쌍한 신앙

열심히 잘 믿는 다고 믿었는데 꽝 되는 신앙이 있습니다.

‘불쌍한 신앙’ 입니다.

고전15:19~22)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

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입니다.

사도신경고백처럼 주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찾아 오셨고, 나를 위해 유월절 어린 양되어 대신 죽으시고, 죄를 장사지내고, 먼저 부활하셔서 새 생명을 주

신 줄 믿습니다.

이 공로로 우리는 값없는 하나님은혜로 자녀가 되었고,

성령보혜사가 내주하시며 동행하시는 놀랍고도 거룩한 삶을 삽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다니지만 초월적이어서 하늘을 향하고,, 성경적이지만 주신 자유를 누리며, 율법은 없으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그 율법을 세웁니다.

그러나 설령 율법을 세우지 못해도 죄가 없는 줄도 믿습니다.

무엇 보다 우리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준비합니다.

 

결론) 부활신앙의 위대함은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는 확실함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믿음으로 내 부활이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주님을 믿음으로 내 것이 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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