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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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은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곁의 사람들이 눈만이 입으로 대화까지 한 큰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불신과 의심을 가졌습니다.
주님은 그런 도마에게 부활을 확신 시켜주시면서 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1) 믿음
믿음은 확신하고 다릅니다.
확신은 확인이 전제가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 보다 앞선 신임,,또는 신뢰의 증명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 청년 배달원이 일하던 쌀 상회를 인수 받았지만 중일전쟁으로 쌀이 유통되지 못한 탓에 망했습니
다.
이제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자동차공업사를 냈는데 곧 화재로 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사채업자에게 돈을 밀려 성공했습니다.
이 사채업자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어떤 담보 보다 크게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업가는 태생적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신뢰가 없어져 곁의 사람도 잘 신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류와 말이 많아졌고,,과정도 복잡해져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최근 뉴스입니다.
3형제가 90대 노모로부터 유산을 잘 나누어 받았지만 막내가 자신들 보다 더 받은 것을 알고, 90세 노모에게 막내의
재산을 찾아서 자신들에게 주라고 행패를 부리다, 노모 입에 양말을 넣어 살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마만이 아닌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평소에 신뢰했다면 어땠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신임하고 끝까지 따르고 실제적 부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주님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 되도다” 하신 줄 믿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는 어떤가요? 도마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성경을 믿나요?
창세기 1장1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를 믿나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 요한계시록 22장20~21절도 믿나요?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주예수
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
그렇다면 그 사이의 모든 성경의 내용들을 믿어야 합니다.
노아의 방주,,출애굽,,주님의 성경대로의 동정녀 탄생,,부활과 승천하심 그리고 재림과 천년왕국 등,
믿음에는 건강처럼 삶과 인품에서의 증거가 증명됩니다.
그 증거가 주관적인 믿음의 확신이고 객관적인 신뢰의 신임이 됩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한 영상을 보았는데 최근 예루살렘의 공사장에서 가족묘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범상치 않은 관이 있었고, 글과 유골이 있었기에 조사했더니 예수님을 심문했던 대제사장 가야바였습니
다.
그런데 성경대로 실제 인물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은 탓입니다.
2) 표적
부활의주님은 부활 전부터 많은 표적을 이루셨습니다.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을 행하셨으나
행하신 모든 표적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표적이었습니다,
무슨 목적인가요?
“31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즉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된 일, 오병이어, 물위를 걸으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등,,
재미와 놀람과 밥벌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당신을 계시하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주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일이 어렵다는 반증입니다.
오래 전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 백성의 인도자로 부르시면서 주신 신임장도 표적이었습니다,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스라엘민족과 바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줄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표적도 처음에는 이스라엘과 바로에게 불신 당했으며, 점점 강도가 강한 표적 후에 비로써 하나님을 알
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의 정도를 보면 불신의 정도가 증명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이 권세를 주신 것도 주님대리인의 신임장입니다.
시대의 불신과 저들의 완악함을 들어내고 회개하여 주님을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 표적이,,아니 얼마만한 표적이 필요할까요?
천기는 분별하면서 이 시대를 분별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 어느 때 보다 활동을 많이 하는데,,일반적으로 마귀가 없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성적이기만 할 뿐 전혀 지성적이고 영적이지 못한 무지와 어둠의 포로된 탓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이런 무례와 무모함이 병행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다면 어떨까요?
표적 보다는 성령의 감화 감동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회개는 물론, 주 송축하는 일과, 사랑과 평화와 섬김과 나눔의
선한 역동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3) 그 이름을 힘입어
요20:31) ~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표적은 어떤 표적이든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일입니다.
세상의 표적은 요란하고 진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표적은 그럼에도 하나님의 질서는 여전합니다.
태양이 멈추었는데 지구는 평안했고, 냄새났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는데 이상이 없었습니다.
또 성령이 크게 활동하신 대각성과 대부흥이 일어났는데,, 도둑과 강도짓은 없었습니다.
흔히 “표적 표적” 을 구하지만 진짜는 주가 주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이어야 합니다.
모세가 큰 표적을 이룰 때 바로의 술사들도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람들에게는 거리나 군중에서 일어나는 큰 표적 보다는,, 내면의 감화와 감동을 크게 사모할 표
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표적이 아닌 음성으로 주를 믿고 따르는 자
가 주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고전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에스겔선지자가 본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성령님의 새 창조의 역사입니다,
골짜기에 흩어진 뼈들이 맞추어졌고 살과 가죽이 입혀진 후 마침내 하나님의 커다란 군대가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 중에 비슷한 큰 일 두 개를 겪었습니다.
청년들이 수련회를 가서 한 청년이 익사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부모는 교회의 중직자들인데, 장례 후 교회에다 형사와 민사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교회는 2년 6개월이 마비되
었습니다.
또 다른 일은 역시 초등부가 수련회에 가서 한 학생이 죽었습니다.
엄마는 집사님이었고 아버지는 2주일째 예배에 참석한 교인이었습니다.
교회는 또 힘들어질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마친 후 그 부모가 편지를 써와서 교인들 앞에서 읽었습니다.
“ 우리 민웅이가 그리스도인으로 잉태되고,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유아세례인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세상의
때 묻지 않고 순결할 때 데려가시니 감사합니다. 교통사고처럼 끔직한 사고가 아닌 하나님말씀 배우는 수련회자리
에서 불러 가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 장례에 교회와 교인들이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주를 믿는 사람인가요?
표적을 구하고 따르기 보다는 다른 표적인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구하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결론) 말세에는 사람들이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는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보지 않고 믿는 복된 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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