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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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씨는 군복무시절 성악가 용사답게 대통령 앞에서 노래하도록 명령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즉흥적으로 다른 곡을 불렀기에 모두가 난감에 빠져 하마트면 감방에 갈 뻔했다고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자 앞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책임역시 큽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관원이 되었으니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직책입니다.
단순히 술만 따르는 관원인지 아님 연회장인지,,
아님 기업에서 한때 유행했던 술상무처럼 술마시며 대접하는 직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왕과 대면하고 말도 섞는다는 사실입니다.
느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왕이 신임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자리인데 느헤미야의 실력과 인격의 출중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 TV컨테츠는 인터뷰가 많습니다.
각개 각층의 일반 전문인들을 초청해 그 일이 시작된 동기와 과정의 에피소드와 애로를 듣는 프로인데 딴 세상 얘
기라서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준비된 실력과 기다린 기회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과정역시 실패와 시행착오를 지내야 합니다.
모르긴 해도 느헤미야도 진작부터 수산궁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행정관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선임행정관이
었을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자리를 꿰찼을 것입니다.
그에게 누가 있었을까요? 누가 힘이 되어주었을까요?
노예된 요셉에게 누가 과연 있었을까요? 다니엘에게는 누가 있었을까요?
느헤미야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듯합니다.
가족과 친구 외에는,, 뒷배를 봐줄 만한 인물은 없었을 성 싶습니다.
그 결핍과 부족이,, 약한데서 강함이 되어 복이 됩니다.
그런데 이를 알면서도 삶으로 일구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배우는 일이 신앙이고 가르치시는 선생이 보혜사인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도 이를 배웠기에 훗날 고백했었습니다.
암몬과 모합사람들의 관한 얘기에서 진술했었습니다.
느13:2)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고 아버지십니다.
다윗은 그 믿음을 잘 지녔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맞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더 이상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만약 필요하다면 과잉이고 불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적절하게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이 채우심을 즐겨야 주 동행을 실감하게 됩니다.
느2:18)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
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역사에서는 배웠어도 실제 삶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것을 왜 일까요?
머리에서만 박혀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이를 가슴으로,, 지체로 내려 보내 삶을 일구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험은 산지식이 됩니다.
요약하면,
*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거울입니다.
느헤미야의 수심어린 얼굴이 왕에게는 근심이 있는 상태로 비추었습니다.
느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
이 있음이로다 하니
과연 통찰력이 있는 것을 보니 왕답습니다.
“병이 없는데 어찌하여 수심이 있느냐”
어디서나 리더는 이런 안목과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근심을 읽은 것은 느헤미야의 얼굴빛이었습니다.
기스르월에 고향에 남겨진 민족들의 피폐한 소식과 예루살렘 성의 훼파됨을 알게 되어
니산월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즉 3~4월인 유월절이 있는 봄에서 시작하여 성전을 수리한 수전절까지인 11월까지
근심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성도는 개인적인 근심의 일보다는 하나님께 향한 열심으로 이런 수심이 있어야 합니다.
* 성도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분별력, 일에 대한 분별력,, 때에 대한 분별력,,등
“전10: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오른 쪽에 누가 계시나요? 하나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할수록 이 분별력이 생겨 확실한 정체성을 갖습니다.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도 리더답게 자기의 정체성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불신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상대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이었습니다.
느2:10) ~ 이스라엘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그러므로 이들을 향해서 과감히 선포했습니다.
느2:20) ~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좋은 게 좋다거나,, 아님 상대방을 헤아린다고 해서 침묵하면 비굴하게 됩니다.
요즘 정치적으로 팬덤 현상이 생기니 자신을 이파 저파 아닌 예수파라고 하는데,, 말은 쉬워도 비굴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밖에 없기에 분명히 색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적으로는 주님과 성령과 성경을 믿는 우리는 범사에 거룩이고,,사람에게는 인자 즉 사랑이어야 합니다.
* 성도는 지혜를 늘 사모하며 찾아야 합니다.
이 자세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신속하며 은밀하기도 합니다.
느2:4)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2:12:1)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
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다윗은 전쟁을 평생 치른 용사였습니다.
그가 언제 하나님의 말씀에 보며 언제 기도했을까요?
바로 느헤미야 같은 모습인 줄 믿습니다.
옛 선비들이 들고 다니던 벼루를 보았습니다.
작아도 돌로된 벼루였고 몹시 번거로운 필기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선비는 글이 떠오르면 글을 썼던 것입니다.
비슷하게는 ‘마상잔 이라는 술잔이 있습니다.
출정이나 진격 중에 말위에서 마실 수 있는 술잔이었습니다.
이런 벼루나 마상잔은 당시에 필요에 의한 발명품이어도 현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쟁 중의 기도는 무엇일까요? 묵도가 아니겠나요?
암송을 읊조림 역시 주의 말씀을 듣는 일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현대는 믿음 없는 시대가맞습니다.
결론) 먹고 마시는 일에만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면 육의 사람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을 생각합니다.
평상시 무엇을 생각하시며 묵도와 성경암송은 얼마나 훈련되었나요?
어제의 BTS 광화문공연 뉴스를 보니 아미들의 성원과 충성이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게 복음 전도의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많은 인파가 어울려져 주님께 경배했으면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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