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에 이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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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는데 “영혼을 갈아 넣었다.” 하거나 또 누군가 집을 샀으면 “성공했네.” 합니다.
집이 무엇이기에 영혼을 갈아 넣고 집 산 것이 인생의 성공이 될까요?
영혼의 가치와 삶의 가치가 덤핑된 듯해서 우려되는 말입니다.
1) 썩을 양식
소유냐 존재냐는 언제나 인류의 대명제입니다.
존재 보다 소유의 가치를 붙잡은 현대의 물질주의는 풍요한 산업을 이루었으나 급진적 쾌락주의와 이기주의를 끌
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배달 라이더 같은 비임금노동자가 도합 860만 명이라니 우울한 시대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돈을 더 주거나 지위를 높여주면 당장은 더 일하지만 곧 시큰둥해집니다.
그 이유는 비젼이 없어서 그런데 주님께서 참 비젼을 교훈하셨습니다.
요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
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소유보다는 존재에 비젼을 주신 줄 믿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오신 모 목사님은 자비로 선교한다면서 미국에서 알바 했던 양계를 경험삼아 병아리 200마
리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아리가 좀 컸을 때 3분의 2를 도둑맞았습니다.
“하나님, 왜 이럴까요?”
이제는 땅을 300평을 사서 전문가의 도움으로 포도를 심고 5년이 지났는데 흉작이었습니다.
비료를 주고 토양을 바꾸었는데도 역시 다음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하나님, 왜 이럴까요?” 그 때 하나님말씀이 들렸습니다.
“내가 언제 너보고 자비로 선교하라고 했더냐? 열심히 전도하면 내가 너와 네 가족들을 책임져주지 않겠느냐?” 때
마침 생각난 말씀이 사55:80절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였기
에 회개하셨답니다.
목사님은 그때부터 열심히 선교했더니 모든 식구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사람은 땅에서 사는 흙으로 빚어진 존재라서 열심히 살면 살수록 땅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형상과 모양을 닮은 만큼 하늘 비젼을 갖고 살면 하늘위로를 받게 됩니다.
부자들의 강의를 들어보셨나요? 공통되게 자식들에게 일찍이 경제 교육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경제공부에서 세계를 배우고 또래에 비해서 부자로 산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자본주의의 논리고 소유에 대한 교육인데 그러나 세상이 흔들리면 어떨까요?
그러므로 성도는 경제만 아닌 앞서 자식들에게 주님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궁궐에 심기 우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의 존재의 교육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동역자로 부르셨음을 성경대로 믿고 경험해서 확신해야 합니다.
세상이 살기어렵다고 자꾸 자신만 위하는 존재로 변질되고, 자꾸 무엇을 특별히 해야만 한다며 방법을 찾는 경우는
인본주의고 세속주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복음‘사역’ 혹은 전도사역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또 누가 사역한다고 하면 신뢰하기 어렵습니
다.
이유는 사역이라는 말이 소유의 의미가 짙은 프로페셔널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이 사역이기 보다는 인격이고 삶이면 어떨까요?
거룩하면 되고, 진실하면 좋고, 사랑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목적이고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삼 목적과 목표를 정하고, 방법을 정해서 효율과 효과를 내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여유가 없이 목표달성에 헉헉대는, 또는 완전하려고 하는 애씀은 천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편히 쉬어라” 하셨습니다.
아들과 종은 아버지요, 주인인 집에서 함께 살지만 품꾼은 다른 곳에 사는 존재입니다.
이런 품꾼은 필요할 때 삯을 받기에 늘 일해도 가난하면서도 피곤할 뿐입니다.
2) 영생의 양식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 후 아담을 아담이라 이름을 부르셨고,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들도 직접 이름을 지을 만도 하셨는데 그렇지 않고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 후 아담을 아들인 후사로 여기신 것입니다.
이 아담을 향해서 사명을 주셨는데 간단하면서도 막중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조된 세상을 디테일하게 채우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이 사명이 있고, 성도도 직분과는 무관하게 이 말씀에 소명자입니다.
성도의 은사와 기질이 하나님 기뻐하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2세기 교회의 성도들의 삶이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당시의 왕이 지역의 군주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박해받는다.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박해를 받지만 의롭다함을
얻는다.”
당시 기독교에는 3종류신앙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로마라는 세상에 순응하는 신앙이 있었고,
둘째는 운둔하면서 자신들을 지키는 신앙이 있었고,
셋째는 편지처럼 로마에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과 단절하지 않고 사랑과 환대로 영향력을 확산시킨 신앙이 컸
던 것입니다,
또 위의 편지와 함께 황제인 우리아누스의 편지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나그네를 너그럽게 대하고 죽은 자의 무덤을 관리하며 가난한 동료기독교인뿐만이 아니라 신자가
아닌 가난한 자들까지도 구제하는데 로마종교를 믿는 신자들은 이 기독교인들처럼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점이 애
통해 하다.”였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박해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대체로 성도들의 소명은 반드시 기독교적이어야 하고,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이어야 하며 특별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었다 하면 목사를 선호하는데,,그렇지 않습니다.
고전12: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 이겠느냐
자동차에 많은 부품이 필요하고 연합되어 있듯이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일은 다양합니다.
가정주부인 경우는 성경을 옮겨 쓰고 매일 교회에 와서 살기 보다는 살림 잘하고 자녀를 주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
하며, 이웃에게 주의 성덕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의 복음화를 기도한다면서 “나 교회가요.” 하며 회식이나 야근을 빠지기보다는 그 문화 속에서 더
성실해야 합니다.
구두를 만들거나 닦는다면 어떨까요?
구두에 몰래 십자가를 그려넣지 않아도 더 잘 만들거나 깨끗이 닦아야하지 않을까요?
기업가는 어떨까요? 국가와 직원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대언하면,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썩어지는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멋있게 들려도 이루지 못해도, 오직 거듭나고 성령 받고
영생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성도에게는 가벼운 멍에가 될 줄 믿습니다.
3) 영생에 이르는 일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주님께 근사한 질문을 했습니다.
요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지금도 좀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착각인 것은 땅에 사는 흙으로 빚어진 존재가 죄성을 모르는 무지에서 온 질문입니다.
감히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 이들이 하나님을 위한 일일까요?
세상에 살던 습성대로 자꾸 일을 찾고 일을 만들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은 먼저 우리를 주 안에서 쉬라고 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담도 창조된 후에 첫 행동이 하나님과 안식이었고,,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도 전도 보다 함께 계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 안식으로 주님과 쉴 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성도는 은혜로서 죄 사함 받고, 자녀되고, 성령으로 불러주실 때 은사대로 쓰임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한다면 가당치 않은 질문입니다.
실제 제자들은 어땠나요? 주님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어도 주님의 향방을 몰랐고,,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
을 유령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직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두려워말라며 평안을 주셨고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결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그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을 ‘믿는’ 일로써 영생에 이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주님이십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그 주님을 인격과 삶에 영접함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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