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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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 앞을 다니면서 며칠 전부터는 들리고 싶었다.
드디어 하늘도 청명한 오늘 오랫 만에 들렸다.
고목들이 비석처럼 서 있고 경건한 참배를 주문한 안내 글,
그러나 주변 자동차 소음이 끊이질 않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다.
먼저 발길 닿은 곳은 중앙 높은 곳의 큰 비석이었다.
그 옆에는 읽지도 못하는 한문 비석이 있고.
독립훈장대통령장을 받은 영국출신 언론인 '베델' 이다.
대한매일신문을 창건해서 일제의 식민지 야욕을 폭로한 인물이다.
37세에 숨져 양화진에 묻었다는 그 숭고한 짧은 삶에 숙연해졌다.
또 다른 비석은 '하디' 가족이었다.
하디는 1900년도 중반에 전개된 한반도 성령대부흥 계기를 마련한 영적 지도자이다.
의사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 45년 간 선교사로 헌신한 후 은퇴하여 미국에서
지내다가 1949년에 죽었고, 양화진에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은 큰 딸과
여섯 살에 죽은 둘째 딸이 안장된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된 덕이다.
교회 역시 그렇고,
어느 덧 죽음도 괜찮다는 인식이 내 안에 있다.
진작에 죽음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기에,, 나이 탓은 아닌 줄 믿는다.
잠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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