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4:1~23, 산발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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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랏은 사람 이름입니다.
그것도 좋지 않은,, 또 있습니다.
4장은 그들과 그들의 악행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느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느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보수되어 간다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어느 사회학자가 느헤미야의 후손과 산발랏의 후손을 추적 비교한다면 알만 할 듯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꼭 갚아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 보다 낫고" 를 좋아하며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이란 예쁘거나 편한 이름이 아니라 훌륭한 이름일 것입니다.
또 좋은 기름이란 비싼 기름일테고,, 둘 다 가치 있지만 이름값이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존재냐 소유냐" 의 긴장 속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난할지언정 존재라는 정체성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목사냐? " 는 참 부끄러운 지적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목사님이셨군요,,어쩐지,," 이는 최소한의 내 모습이라 여깁니다.
완전하진 못해도 완전을 향해서 노력합니다.
돌탕에 맞고 죽어가는 스테반은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졌던 무리를 향해서 용서기도를 드렸습니다.
행7: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러나 그들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되는가 는 별개입니다.
살후1: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시니
악인들의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거짓을 앞세우고 선동꾼을 불러 더 부추킵니다.
여기에 예수님도 사도바울도 나봇도 스테반도 그리고 모르드개도,,
느헤미야도 당하고 있는 것이며 숱한 의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마귀의 승리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느4: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하나님이 저희 꾀를 폐하셨으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게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잠잠하고 되레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를 때 흥분하며 내가 복수하고자 칼을 갈며 마침내 복수가 복수를 낳게 됩니다.
이는 유감이거니와 불신앙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께 읍소합니다.
시94:1~2)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믿는다고 해서 무방비나 태평으로 지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탁했으면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합니다.
느4: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었느니라
이 균형,, 이 조화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령사람들의 건강미입니다.
여기에는 호들갑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었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습니다.
아,, 멋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멋이기에 세상이 놀라고 반하게 됩니다.
그것도 좋지 않은,, 또 있습니다.
4장은 그들과 그들의 악행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느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느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보수되어 간다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어느 사회학자가 느헤미야의 후손과 산발랏의 후손을 추적 비교한다면 알만 할 듯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꼭 갚아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 보다 낫고" 를 좋아하며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이란 예쁘거나 편한 이름이 아니라 훌륭한 이름일 것입니다.
또 좋은 기름이란 비싼 기름일테고,, 둘 다 가치 있지만 이름값이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존재냐 소유냐" 의 긴장 속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난할지언정 존재라는 정체성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목사냐? " 는 참 부끄러운 지적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목사님이셨군요,,어쩐지,," 이는 최소한의 내 모습이라 여깁니다.
완전하진 못해도 완전을 향해서 노력합니다.
돌탕에 맞고 죽어가는 스테반은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졌던 무리를 향해서 용서기도를 드렸습니다.
행7: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러나 그들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되는가 는 별개입니다.
살후1: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시니
악인들의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거짓을 앞세우고 선동꾼을 불러 더 부추킵니다.
여기에 예수님도 사도바울도 나봇도 스테반도 그리고 모르드개도,,
느헤미야도 당하고 있는 것이며 숱한 의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마귀의 승리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느4: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하나님이 저희 꾀를 폐하셨으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게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잠잠하고 되레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를 때 흥분하며 내가 복수하고자 칼을 갈며 마침내 복수가 복수를 낳게 됩니다.
이는 유감이거니와 불신앙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께 읍소합니다.
시94:1~2)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믿는다고 해서 무방비나 태평으로 지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탁했으면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합니다.
느4: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었느니라
이 균형,, 이 조화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령사람들의 건강미입니다.
여기에는 호들갑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었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습니다.
아,, 멋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멋이기에 세상이 놀라고 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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