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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10:1~39,그 인봉한 자는, > 나의간증

느10:1~39,그 인봉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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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8-16 15:28 조회 1,0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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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극동방송을 들으니 내일 시작될 6,25정전 68주년을 맞이한 모금방송이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6,25 때 숭고한 희생을 치른 미군들을 기념하는 와싱톤 전사자추모공원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겨 기록하기 위한 추모의 벽 공사비용 모금이랍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사한 캬튜샤들도 기록된 답니다.


성경에는 많은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만 해도 산발랏 같은 악인들과 이처럼 인봉이란 거룩한 일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는 팔자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로 결정된 일로 영원의 분수령이 됩니다.

참 두렵습니다.

느10:10)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느헤미야는 여기서도 1번으로 이름을 올렸습니

다.

혼자가 아닌 아비까지 이름이 올려졌고 총독이란 사회적 직책도 올려졌습니다.

아비는 자식이 잘한 덕 같습니다. "자식이 잘하면 부모가 죽어서도 고해를 면한다" 는 굳이 불교설법이 아니라도 일

반적인 복입니다.

총독이라는 직책은 대표성이고요. 학사 에스라가 빠졌는데 그 이유를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부흥회를 인도하고는 엘리야처럼 감람산이나 세례요한처럼 어느 광야에서 충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하한 여러 분야의 대표적 인물들이 앞장 섰고 그 밖의 인물들과 민족들은 맹세로 갈음했습니다.

느10:29)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이 율법

을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레와 율례를 지켜 행하며


현대처럼 저마다 제 잘 난 멋에 각개약진 한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제국주의도 아닌데 이처럼 하나된 것은 민족성도 하나지만 주님이 한 분이신 덕인 줄 믿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대망하신 일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면 믿겠나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기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하려 함

이니이다


성도는 언제나 여기에 관심을 갖고 하나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됨은 거룩한 일처럼 성령이 함께하심이요, 나누어짐은 마귀의 훼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시장논리가 들어와서 하나나 거룩보다 큰 것에 꽂혔는데 이는 속물주의라 할 수 있고 천박해

진 원인도 됩니다.


이제 이들의 삶은 생활신앙으로 변환되었으니 큰 사건입니다.

순수혈통을 보존하려 했는데 이는 순수신앙 보존 노력이기도 합니다.

느10:30)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이후 얼마나 많은 젊은 선남선녀들의 눈물이 있었을까요? 상상해 보았습니다.

또 불편해도 성결하기 위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려했습니다.

각종 제사와 제사장을 율법대로 섬기도록 했으며 첫열매와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했습니다.

느10: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갖오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한마디로 기본을,, 기초를 다시 튼튼히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진보나 개혁이 아니라 변질이고 신앙적으로는 이단과 사이비가 나오게 됩니다.

해아래는 새것이 없다는 선언이 성경의 선언 아닌가요?

대충적인 기본과 기초에서,, 쉽게 가고 좋은 게 좋을 거라는 안일함과 편리주의에서 탈이 생기고 때론 대형 사고로

이어 지는데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는 가상한 노력이 또다른 제사이고 기도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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