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느5:1~19, 백성의 부르짖음 > 나의간증

느5:1~19, 백성의 부르짖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8-15 09:49 조회 1,003회 댓글 0건

본문

5장은 " 그 때에 " 로 시작됩니다.
위의 모든 상황과 연결된 지금의 상황입니다.
세상사가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공사에 한참이다 보니 한쪽이 문제가 생겼는데 유다백성들을 원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했는데 다 힘들고 가난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행6:1) 그 때에 제자가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한참 교회가 "으샤으샤" 하며 일어서는데 문제의 바람이 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즉시 조치에 들어갔었습니다.
그 이유를 자신들의 부덕의 소치로 여기고,,
본래의 직무에 충실하도록 일곱집사들을 세워 구제에 전념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노했으나 깊이 생각한 후 이웃을 외면한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고 또한 느헤미야 자신부터 삶의
모양을 고쳤던 것입니다.
느5: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모든 설득력은 여기서 나옵니다.
진정한 리더쉽인데 스펙이나 웅변이나 책망이 아닌 모범입니다.
그리고 투명성과 청정성입니다.
느5:14) 또 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부터 제 삼십이년까지 십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으니 최소한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느5: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았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녹을 받는 일을 느헤미야가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고 궁핍이 좋아서 택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악에서 떠나 의에 살았던 것입니다.

신기하게 이런 일은 모르는 듯 해도 주변이 알고 칭찬하거나 욕합니다
그리고 닮습니다.
불량 총독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니 그 종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종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느5: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착취하는 일과 일을 하는 일,,사실 얼마나 큰 차이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이런 모범을 지녀야 합니다.
이럼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산이고, 기업가는 직원들에게 전도이며, 교회도 주님의 몸된 소명을 이루는
일입니다.

실제적으로 믿음의 가정, 믿음의 기업이란 무엇인가요? 성경적 이름인가요? 교회다니는 구성원인가요?
아님 예배가 있어서인가요? 이것 만이 아닌 악에서 떠나 의를 따름이 있어야 합니다.
세금도, 임금도, 헌금도, 거래처와의 거래대금도 투명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바가지나 후려치기는 근절해야 합니다.
결국은 자기 머리위에 꽃을 피우는 일이고 후손들의 미래를 닦아주는 일입니다.
느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런 삶, 이런 인격, 이런 신앙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진솔하기에 언제나 담백합니다.
언제나 열린 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자신이 먼저 압니다.

그러나 회칠했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돌고도 돌아서 하나님께 나아갔어도 믿음의 담력이 없어
어떤 응답이나 은혜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리더쉽의 목표는 달라도 목적은 딱 두가지입니다.
섬김이냐? 군림이냐? 언제 어디서나 동일합니다.
주님은 섬기려 오신 분입니다.
그 생명을 영접하면 그처럼 되는 줄 믿습니다.
어떠신지요? 누구든지 크고자하며 먼저 낮아져야 한답니다.
그 시작은 주변의 소리를 듣는데서 시작됩니다.
아부가 아닌 신음과 기분 나빠도 비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