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믿을 때에, 행19:1~6 > 나의간증

믿을 때에, 행19: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7-09 10:51 조회 2,378회 댓글 0건

본문

스타들의 옛모습이 가끔은 공개되곤 합니다.
턱하니 알아볼 수 있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전혀 모를 스타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람이 현대에 왔다면 그가 알아 볼 수 거리는 어디일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남대문 정도? 광화문 정도? 무악재 정도? 정릉 정도?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은 에베소지역입니다. 자유자로서 다닌 마지막 선교입니다. 오늘날 지도를 놓고 줄을
따라가면 참쉽습니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시작하여 터키내륙을 지나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지역을 돌아 다시 예루살렘까지 이룹니다.
특히 이 에베소는, 훗날 에베소서까지 받은 복스런 곳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우상이 만연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이들이 섬겼던 아르테니 신은 다산의 여신으로 경제적으로 풍부를 잃어가는 에베소에, 경제를 회복시켜주는
희망격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우상숭배가 깊었을지요.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이기도 했습니다. 자연 이 에베소에서 사건이 많았습니다. 본문의 성령이 안수할 때 임하신 일,두라노서원에서의 강론, 구신축출, 마술서적 태운 일, 은수공업자들과의 충돌,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인들이 출세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 이들은 청나라와 무역에 치중했습니다.
개성이 그렇고 평양이 그랬습니다. 서해의 몇항구를 통해 외국과 교류가 왕성했던 것입니다.
'개성깍쟁이"가 이 탓에 나온 평가였습니다. 이 덕에 평양은 일찍기 잘살았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곳도 결국 이 항구들을 통해서 왔습니다. 백령도에서 마주한 황해도 장연군과 은율군은 목사님들이 제일 많이 난 고장입니다. 지리역으로나 사회적으로 에베소와 흡사합니다.

이 곳에 바울일행이 찾았습니다.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벌서 이곳 까지 복음의 소문은 당도하여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로마제국이
침략전쟁을 위해 닦아논 마차길이 복음의 전도 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에게 행19:2)가로되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습니다. 나름의 이상함을 느꼈나 봅니다. 예로들면 탄산수는 톡하니 쏘는 맛이 있어야되는데 그 맛과 느낌이 없다면 어떨까요? "이게 뭐야? 어디서 산거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의 맛과 힘을 느끼지 못했나 봅니다.
아니게 아니라 "행19:2)~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음이라
바울의 진단은 옳았습니다. 바울은 진단만이 아닌 처방도 했습니다. 다시 복음을 전하고
행19:4~6) ~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복음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힘은 성령임이 재차 입증된 사건입니다.
이런 진단과 처방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믿을때에" 성령 받음은 당연지사입니다. 주의 선물이고 보증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허약합니다.
"믿을때에" 주일이면 그냥 교회만 다니면 된 일로 여기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요?
"믿을때에" 세례만 받으면 되는 줄로만 아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요?
"믿을때에" 착한 일만 많이 하면 되는 줄로 아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 성령님은 오늘날 어찌 그리도 잠잠하시는지요?
구원과 주를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전도자의 설득력이나 듣는자의 이해력이 아닌 주의 선물일테니
오늘도 요청됩니다.

고인이신 박 형론박사는 장로교의 초기 신학자였습니다. 그 아들은 박 아론박사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 일을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신학자로서 오늘 날 성령의 활동은 그쳤다고 가르셨지만 어머니는 성령의 은사를
베풀었지요. 아버지가 감기몸살로 아주 힘들면 어머니께 안수기도 받곤하셨지요. 이를 학생들이 알고
목사님은 왜 가르치시는대로 믿지못하느냐 타박하면 죽게되었는데 무얼 따지느냐 하곤하셨지요."

행여 오판된 신학이 성령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을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