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도의 이별, 행2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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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언제나 아쉽습니다. 공항이나 항구의 이별은 슬픔이 많습니다.
오래된 추억입니다만 친구가 미국으로 갈때에 김포공항에 배웅나간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연길에서 그곳의 파트너들을 뒤로 하고 올때 저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에베소에 와서 참 열심으로 선교했습니다. 선교를 위한 삶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었기에,
그런 삶 이후의 이별이기에 피차에 아쉬움이 컸을 것입니다.
행20:17~20)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청하여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서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가지 내가 항상 너희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이러한 바울 일행의 이별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행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목적이 나옵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실제 예루살렘에서는 대단한 일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도 행21:4)~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런 예루살렘입성에서 약간의 환영과 선교보고와 그리고 잡히는 일만 있습니다.
왜 예루살렘 입성을 서둘렀는가? 왜 아시아선교를 마치려했는가? 솔직히 잘 이해되질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움직이던 그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힘을 감지한 그가? 왜? 서둘러 아시아 선교를 마치면서까지
예루살렘을 향했는가?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지쳤다." 그럴 수 있습니다. 쉼이란 묘해서 불현듯 치고 들어옵니다.
또한 쉼이란 묘해서 나만의 쉴곳이 사람따라 도시나 건물이나 골방이 될수도 있는데, 사도바울에게는 예루살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의는 또 다릅니다.
행:22~24)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려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심령에 매임" "예수께 받은 사명" 그렇습니다. 바울이 그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자 함은
지쳤음도 아니요, 에베소가 싫어짐도 아니요 예루살렘을 보려함도 아니요 복음 전하는 사명에, 심령이 매임을 당해서 입니다. 비슷한 말로, "불붙는 듯한" 이고 "미치는 듯한 " 입니다.
남녀간에는 상사병입니다.
이러함을 에베소의 장로들은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정을 뛰어넘는 이별을 이루었습니다.
행20:37~38)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여기서 성숙을 봅니다. 바울의 성숙, 에베소 장로들의 성숙, 자신들도 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의 성숙함,
TV프로,동물농장에서 보았습니다. 날개가 이상이 생겨 날지못하는 새끼새를 어미새는 지극히 챙겼습니다.
통상 새끼를 돌보는 기간이 넘었음에도 어미는 잊지않고 날아와 새끼를 챙겼습니다.
얼마 후 그 새끼는 어미를 따라 날았습니다. 잠시 새끼를 돌보던 화원주인과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로 감격하며 환송했습니다. 새끼에 대한 심령의 매임이 있었습니다. 조류학자들은 기적이랍니다.
어미새의 모성이 천성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연민에, 혹은 동지애적인 동정에 머물기 쉽상입니다. 그러는 사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은 멈추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장했어도 성숙하지 못한 탓입니다.
행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성장과 성숙은 다릅니다. 성장했으면 성숙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성장병에 걸린 나머지 계속 크기를 바라면서,
배려하는 성숙이 없어 못내 아쉽습니다. 밀레도의 이별은 눈물의 이별만이 아닌 성숙의 이별이었습니다.
오래된 추억입니다만 친구가 미국으로 갈때에 김포공항에 배웅나간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연길에서 그곳의 파트너들을 뒤로 하고 올때 저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에베소에 와서 참 열심으로 선교했습니다. 선교를 위한 삶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었기에,
그런 삶 이후의 이별이기에 피차에 아쉬움이 컸을 것입니다.
행20:17~20)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청하여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서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가지 내가 항상 너희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이러한 바울 일행의 이별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행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목적이 나옵니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실제 예루살렘에서는 대단한 일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도 행21:4)~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런 예루살렘입성에서 약간의 환영과 선교보고와 그리고 잡히는 일만 있습니다.
왜 예루살렘 입성을 서둘렀는가? 왜 아시아선교를 마치려했는가? 솔직히 잘 이해되질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움직이던 그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힘을 감지한 그가? 왜? 서둘러 아시아 선교를 마치면서까지
예루살렘을 향했는가?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지쳤다." 그럴 수 있습니다. 쉼이란 묘해서 불현듯 치고 들어옵니다.
또한 쉼이란 묘해서 나만의 쉴곳이 사람따라 도시나 건물이나 골방이 될수도 있는데, 사도바울에게는 예루살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의는 또 다릅니다.
행:22~24)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려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심령에 매임" "예수께 받은 사명" 그렇습니다. 바울이 그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자 함은
지쳤음도 아니요, 에베소가 싫어짐도 아니요 예루살렘을 보려함도 아니요 복음 전하는 사명에, 심령이 매임을 당해서 입니다. 비슷한 말로, "불붙는 듯한" 이고 "미치는 듯한 " 입니다.
남녀간에는 상사병입니다.
이러함을 에베소의 장로들은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정을 뛰어넘는 이별을 이루었습니다.
행20:37~38)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여기서 성숙을 봅니다. 바울의 성숙, 에베소 장로들의 성숙, 자신들도 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의 성숙함,
TV프로,동물농장에서 보았습니다. 날개가 이상이 생겨 날지못하는 새끼새를 어미새는 지극히 챙겼습니다.
통상 새끼를 돌보는 기간이 넘었음에도 어미는 잊지않고 날아와 새끼를 챙겼습니다.
얼마 후 그 새끼는 어미를 따라 날았습니다. 잠시 새끼를 돌보던 화원주인과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로 감격하며 환송했습니다. 새끼에 대한 심령의 매임이 있었습니다. 조류학자들은 기적이랍니다.
어미새의 모성이 천성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연민에, 혹은 동지애적인 동정에 머물기 쉽상입니다. 그러는 사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은 멈추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장했어도 성숙하지 못한 탓입니다.
행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성장과 성숙은 다릅니다. 성장했으면 성숙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성장병에 걸린 나머지 계속 크기를 바라면서,
배려하는 성숙이 없어 못내 아쉽습니다. 밀레도의 이별은 눈물의 이별만이 아닌 성숙의 이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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