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십시오. 행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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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걸인이 순간에 낫고 감격하여 뛰며 감사하여 찬미하는 일은
온 예루살렘에 파다한 소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였고 이들의 당황함은 의문과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 않겠나요? '뭐래?" '별일이야" '아무렴" 등등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사도들은 이 자연스런 모임과 의문과 탐구를 복음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중 언더우드박사의 부인이 쓴 '조선견문록'을 보면, 이들이 신혼 여행을 우리나라
북부지방으로 다녔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을 처음 본 까닭에 가는 곳마다 동물구경하듯이 사람들이 몰려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답니다.
거기다 신기한 사람이 조선말까지 하니 날마다 방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때다싶어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의 설교가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복음설교는 전도설교입니다.
첫째는 복음의 제시가 먼저 등장합니다. 왜 복음을 믿어야 하는가? 입니다.
죄인됨을 제시해야 하니 공의로운 하나님과 심판이, 듣기에 거부스러워도 제시되어야 합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위로만 준다면 나쁜 의사입니다.
진통제만 준다면 어떨까요? 참 의사는 수술의 당위성을 설명할 것입니다.
둘째는 죄인의 헛된 노력을 밝히는 일입니다. 죄인의 공로는 아무런 의의 효력을 이루지 못하는,
헛된 공력됨을 깨우치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아들로써 이루신 사건입니다. 복음의 내용입니다.
넷째는 회개촉구입니다. 죄에 대한 지식이나 죄에 대한 감정만이 아닙니다.
죄에서 돌이킴이고 그 사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함입니다.
전하는 이는 사람이지만 듣고깨우치게 하시는 이는 성령입니다.
이상의 일은 엄숙하고 숭고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실 구원의 일이지만 마귀는 뺏기는 진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증인과 변호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적 일에 경험자는 증인입니다만 곁다리는 변호인에 불과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증인이어야 하는데 변호인이 많고 구경꾼도 참 많아진 것이
문제이고 위기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믿는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소문난 믿음의 성도들이었어도 그들을 복음으로써 더 견고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복음은 진부한 내용이 아닙니다.
증인들에게는 듣고 또 들어도 복음입니다만 변호인들에게는 고상한 지식이요. 구경꾼들에게는
진부한 얘기로 들릴 뿐입니다.
그래서 듣는 상태만 잘 관찰해도 신앙의 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증인으로써 설교합니다. 15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설교의 주된 메세지는 회개촉구였습니다. 19절)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고 믿음의 복을 선포했습니다.
마지막은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섭리를 증면하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우리네는 우상숭배하던 민족이기에 복음이 절실한데도 불구하고 회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지식이, 잘못된 신지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우상의 지식이 빠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 외칠한 무덤같은 외식이 되었습니다.
현대는 종교 다원주의가 높은 장벽입니다.
심지어 NCC 경우 천주교와도 통합을 벌써 시도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무늬가 아닙니다. 낭만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 삶입니다.
신지식이 다르고 정체성이 달라지고 삶의 지평이 달라야 합니다. 마침내 걸음걸이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죽었던 내가 살아났으니 어찌하리요?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달라졌거늘 하물며 주와 함께죽고 산 나는 오죽하리요?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복음의 완전성 입니다. 다른 그 무엇이 추가될 필요가 없습니다.
"구주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일 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온 예루살렘에 파다한 소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였고 이들의 당황함은 의문과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 않겠나요? '뭐래?" '별일이야" '아무렴" 등등 안봐도 비디오 입니다.
사도들은 이 자연스런 모임과 의문과 탐구를 복음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중 언더우드박사의 부인이 쓴 '조선견문록'을 보면, 이들이 신혼 여행을 우리나라
북부지방으로 다녔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을 처음 본 까닭에 가는 곳마다 동물구경하듯이 사람들이 몰려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답니다.
거기다 신기한 사람이 조선말까지 하니 날마다 방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때다싶어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의 설교가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복음설교는 전도설교입니다.
첫째는 복음의 제시가 먼저 등장합니다. 왜 복음을 믿어야 하는가? 입니다.
죄인됨을 제시해야 하니 공의로운 하나님과 심판이, 듣기에 거부스러워도 제시되어야 합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위로만 준다면 나쁜 의사입니다.
진통제만 준다면 어떨까요? 참 의사는 수술의 당위성을 설명할 것입니다.
둘째는 죄인의 헛된 노력을 밝히는 일입니다. 죄인의 공로는 아무런 의의 효력을 이루지 못하는,
헛된 공력됨을 깨우치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아들로써 이루신 사건입니다. 복음의 내용입니다.
넷째는 회개촉구입니다. 죄에 대한 지식이나 죄에 대한 감정만이 아닙니다.
죄에서 돌이킴이고 그 사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함입니다.
전하는 이는 사람이지만 듣고깨우치게 하시는 이는 성령입니다.
이상의 일은 엄숙하고 숭고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실 구원의 일이지만 마귀는 뺏기는 진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증인과 변호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적 일에 경험자는 증인입니다만 곁다리는 변호인에 불과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증인이어야 하는데 변호인이 많고 구경꾼도 참 많아진 것이
문제이고 위기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믿는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소문난 믿음의 성도들이었어도 그들을 복음으로써 더 견고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복음은 진부한 내용이 아닙니다.
증인들에게는 듣고 또 들어도 복음입니다만 변호인들에게는 고상한 지식이요. 구경꾼들에게는
진부한 얘기로 들릴 뿐입니다.
그래서 듣는 상태만 잘 관찰해도 신앙의 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증인으로써 설교합니다. 15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설교의 주된 메세지는 회개촉구였습니다. 19절)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고 믿음의 복을 선포했습니다.
마지막은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섭리를 증면하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우리네는 우상숭배하던 민족이기에 복음이 절실한데도 불구하고 회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지식이, 잘못된 신지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우상의 지식이 빠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 외칠한 무덤같은 외식이 되었습니다.
현대는 종교 다원주의가 높은 장벽입니다.
심지어 NCC 경우 천주교와도 통합을 벌써 시도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무늬가 아닙니다. 낭만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 삶입니다.
신지식이 다르고 정체성이 달라지고 삶의 지평이 달라야 합니다. 마침내 걸음걸이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죽었던 내가 살아났으니 어찌하리요?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달라졌거늘 하물며 주와 함께죽고 산 나는 오죽하리요?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복음의 완전성 입니다. 다른 그 무엇이 추가될 필요가 없습니다.
"구주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일 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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