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뉘는 무리,행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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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선교초기의 중국에서 겪은 일입니다.
겨울 어느 날, 농촌마을의 교회에서 공안 모르게 부흥회를 했습니다.
예배당 밖에는 감시를 세워놓고, 불시에 닥칠 공안을 대비해야만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로 가득 찼습니다. 동네에 비해 성도들이 많았기에 앞줄의 몇성도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400리 밖의 백두산 아래마을에서 왔답니다. 버스로 4시간, 이들은 숙식의 보따리를 챙겨 참석했습니다.
뿐만아니라 2층 빛없는 다락방에는 탈북자들이 숨어서 참석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한국 목사의 설교를 듣겠다며 온 것입니다. 얼마나 사모하는지 1시간 설교가 짧다해서
2시간으로 늘려 설교했습니다.
성회를 마친 후 구역장집사님댁을 심방했습니다. 경운기에 짚을 바닥에 깔고 비닐막을 친체 편도 2시간
거리였습니다. 왕복 4시간, 추운 만주의 겨울벌판에서 그처럼 참석한 것입니다.
그 집에도 어린 탈북자가 숨겨져 있었고, 평상시에는 극동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선교로 온 목사와 일행은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이런 열심히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벌러 객지에 나갔기에, 농촌은 비었습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선교했습니다.
행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민족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빈부귀천을 초월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더우드 선교사 부부가 백령도를 갔더니 그곳의 부녀들이 가득 모여 말씀을 듣고,
풍랑때문에 출항이 연기되자 그들은 선교사 부부를 찾아와 말씀듣기를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백령도가 지금도 왜 좋은신앙의 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곳에는 주의 성령이 은혜를 마구마구 주십니다.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슴을 증거하시니
말씀을 위한 주의 보너스입니다. 말씀이 주의 말씀으로 권위를 세움받을때 나타나는 신령한 증거입니다.
기적을 위한 기적이 아닙니다. 볼거리를 위한 기적이 아닙니다. 말씀을 부정하고 부인하는데에는 이럴 수
없습니다. 믿고 사모하고 순종할때, 증명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이 주의 말씀이 권위를 얻고, 그 증거가 입증되는데도 마귀의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14:4~5)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더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주의 능력이나 사도들과 같은 말씀의 종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들간의 차별일 뿐입니다. 섞여살기에 모르다가 말씀앞에서 극명하게 구별된 일입니다.
병아리와 오리새끼는 구별이 어렵습니다. 함께 어울립니다. 그러나 하늘에 솔개가 뜨면 병아리는 나무 숲으로
숨고 오리새끼는 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주를 찾는 이가 있고 사람을 찾는 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나뉘는 무리는 결국 영원히 나뉘기에 천국과 지옥이 각각 예비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곧 주의 음성이기에 다른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은, 만민이 들어도 구원얻는 이는 만세 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 뿐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큰 것입니다.
겨울 어느 날, 농촌마을의 교회에서 공안 모르게 부흥회를 했습니다.
예배당 밖에는 감시를 세워놓고, 불시에 닥칠 공안을 대비해야만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로 가득 찼습니다. 동네에 비해 성도들이 많았기에 앞줄의 몇성도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400리 밖의 백두산 아래마을에서 왔답니다. 버스로 4시간, 이들은 숙식의 보따리를 챙겨 참석했습니다.
뿐만아니라 2층 빛없는 다락방에는 탈북자들이 숨어서 참석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한국 목사의 설교를 듣겠다며 온 것입니다. 얼마나 사모하는지 1시간 설교가 짧다해서
2시간으로 늘려 설교했습니다.
성회를 마친 후 구역장집사님댁을 심방했습니다. 경운기에 짚을 바닥에 깔고 비닐막을 친체 편도 2시간
거리였습니다. 왕복 4시간, 추운 만주의 겨울벌판에서 그처럼 참석한 것입니다.
그 집에도 어린 탈북자가 숨겨져 있었고, 평상시에는 극동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선교로 온 목사와 일행은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이런 열심히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벌러 객지에 나갔기에, 농촌은 비었습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선교했습니다.
행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민족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빈부귀천을 초월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더우드 선교사 부부가 백령도를 갔더니 그곳의 부녀들이 가득 모여 말씀을 듣고,
풍랑때문에 출항이 연기되자 그들은 선교사 부부를 찾아와 말씀듣기를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백령도가 지금도 왜 좋은신앙의 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곳에는 주의 성령이 은혜를 마구마구 주십니다.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슴을 증거하시니
말씀을 위한 주의 보너스입니다. 말씀이 주의 말씀으로 권위를 세움받을때 나타나는 신령한 증거입니다.
기적을 위한 기적이 아닙니다. 볼거리를 위한 기적이 아닙니다. 말씀을 부정하고 부인하는데에는 이럴 수
없습니다. 믿고 사모하고 순종할때, 증명됩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이 주의 말씀이 권위를 얻고, 그 증거가 입증되는데도 마귀의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14:4~5)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더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주의 능력이나 사도들과 같은 말씀의 종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들간의 차별일 뿐입니다. 섞여살기에 모르다가 말씀앞에서 극명하게 구별된 일입니다.
병아리와 오리새끼는 구별이 어렵습니다. 함께 어울립니다. 그러나 하늘에 솔개가 뜨면 병아리는 나무 숲으로
숨고 오리새끼는 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삶의 위기 앞에서 주를 찾는 이가 있고 사람을 찾는 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나뉘는 무리는 결국 영원히 나뉘기에 천국과 지옥이 각각 예비된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곧 주의 음성이기에 다른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은, 만민이 들어도 구원얻는 이는 만세 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 뿐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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