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 행1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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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1차 선교여행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우리는 앉아서 성경을 통해 그 일행을 통한 성령의 선교를 쉽게 봅니다만 당사자들에겐 중노동이었을 일입니다.
박해의 모든 일과 걸었던 일들, 설교하는 일들, 먹고 만나고 헤어진 일상이 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터,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고생많이 한 사도일행은 마른체형의 소유자였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선교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선교란 제자삼는 일이다.' 했을 성 싶습니다.
행14:20) 제자들이 둘러 섰을때에
행14: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행14:28) 제자들과 함게 오래 있느니라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즉 혈통을 초월해서 복음으로 낳고 마음으로 품어 자신을 전수하는 사람이 선교사일 것입니다.
이 일은 시간이 걸리고 정성과 물질이 함께해야 가능하며 이탈과 변질과 배반의 애환이 꼭 따릅니다.
이 제자가 또 제자를 낳고 또 증인이 되고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 덕에 '은둔의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왔고 광명을 얻었으며, 마침내 25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국이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곧 선교이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선교보고'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선교사역이란 어떤한 일이기 보단 그곳에서 제자를 삼고 양육하는 일일진대, 당장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나라에서 사는 일도 힘들거늘, 내 나라의 목회도 않되거늘, 하물며 타관객지의 이방인으로 얼마나 해야되나요? 조국의 삶을 포기하고 객지에 나간 일도 선교요. 그 자녀들과 건강하게 살면서 자녀양육 하는 일도
선교입니다. 후대의 그 자녀들이 그 땅의 선교사로써 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선교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파송선교사, 협력선교사, 비거주선교사,평신도선교사,심지어는 국내의
복음 성가 가수도 찬양사역 선교사라고도 합니다.
이 참에 용어부터 통일해야 합니다. 전도는 국내용입니다.선교는 해외용입니다.물론 전도가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남전회냐? 선교회냐? 의 경우 그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신학과 신앙, 선교사훈련 받은 목사인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평신도 선교사는 없습니다.
선교사는 파송을 원칙으로 합니다.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협력선교사는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데, 파송은 전적으로 선교비를 부담한 반면 협력은 말그대로
소정의 후원을 이룬 경우입니다. 무난합니다.
비거주선교사, 신생용어입니다. 선교사파송이 어려운, 선교사비자를 내기 어려운국가를 오며가며 선교하는
경우인데 흔하지않습니다. 그 밖에 어린이 선교사는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재미가 아닙니다. 목숨건 사명입니다. 능력을 받아야되기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행14: 22)~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하고
단시간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선교가 유행을 탑니다.
중국이 개방개혁을 했을때 중국선교가 봇물을 이루더니 그 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로 옮겨갔고 지금은
아프리카가 대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선교는 형편에 맞추면 않됩니다. 제일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빚있다고 해서 후원이 그치거나 줄여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많이 울었고 울고 있습니다.
적진의 군인에게 보급품을 않주면 어찌되나요? 교회가 빚내야 할 일이 이 일입니다.
대체로 선교사들이 조국에 들어오면 오히려 선교지에 온 것처럼 낯설어해 합니다.
쉼은 고사하고 빨리 용무를 마치고 선교지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한 쉼의 자리와 선교사들을 위한 격려의 자리와 선교사들의 영적충전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있다해도 선교사들에겐 고비용을 지불해야겠기에 그림의 떡입니다.
주먹도 쥐었으면 펴야하듯이 활도 조였으면 풀어짐이 있듯이 선교사들에겐 이 쉼, 안정, 충전이 매우
시급합니다.행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잘 키운 선교사 한분네가 선교지에서 10~100명 이상의 제자들을 만들고 세웁니다
선교사는 교단과 교파에 속했어도 선교사들로 말미암는 현지의 제자들은 주의 백성이며 성도이고 또다른
바울이며 바나바며 디모데가 됩니다.
캄보디아 선교사는 해외주재원으로서 성회에 참석한 후 변화를 이루어 캄보디아로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17년째, 캄보디아인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워 여러과정의 주의 백성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더러는 북한으로 유학을 자처해 북한선교의 소임을 감당하고 있답니다.
기독신앙은 년수나 직분보다 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면류관이고 자랑이며 상급입니다.
우리는 앉아서 성경을 통해 그 일행을 통한 성령의 선교를 쉽게 봅니다만 당사자들에겐 중노동이었을 일입니다.
박해의 모든 일과 걸었던 일들, 설교하는 일들, 먹고 만나고 헤어진 일상이 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터,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고생많이 한 사도일행은 마른체형의 소유자였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선교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선교란 제자삼는 일이다.' 했을 성 싶습니다.
행14:20) 제자들이 둘러 섰을때에
행14: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행14:28) 제자들과 함게 오래 있느니라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즉 혈통을 초월해서 복음으로 낳고 마음으로 품어 자신을 전수하는 사람이 선교사일 것입니다.
이 일은 시간이 걸리고 정성과 물질이 함께해야 가능하며 이탈과 변질과 배반의 애환이 꼭 따릅니다.
이 제자가 또 제자를 낳고 또 증인이 되고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 덕에 '은둔의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왔고 광명을 얻었으며, 마침내 25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국이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곧 선교이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선교보고'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선교사역이란 어떤한 일이기 보단 그곳에서 제자를 삼고 양육하는 일일진대, 당장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나라에서 사는 일도 힘들거늘, 내 나라의 목회도 않되거늘, 하물며 타관객지의 이방인으로 얼마나 해야되나요? 조국의 삶을 포기하고 객지에 나간 일도 선교요. 그 자녀들과 건강하게 살면서 자녀양육 하는 일도
선교입니다. 후대의 그 자녀들이 그 땅의 선교사로써 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선교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파송선교사, 협력선교사, 비거주선교사,평신도선교사,심지어는 국내의
복음 성가 가수도 찬양사역 선교사라고도 합니다.
이 참에 용어부터 통일해야 합니다. 전도는 국내용입니다.선교는 해외용입니다.물론 전도가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남전회냐? 선교회냐? 의 경우 그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신학과 신앙, 선교사훈련 받은 목사인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평신도 선교사는 없습니다.
선교사는 파송을 원칙으로 합니다.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협력선교사는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데, 파송은 전적으로 선교비를 부담한 반면 협력은 말그대로
소정의 후원을 이룬 경우입니다. 무난합니다.
비거주선교사, 신생용어입니다. 선교사파송이 어려운, 선교사비자를 내기 어려운국가를 오며가며 선교하는
경우인데 흔하지않습니다. 그 밖에 어린이 선교사는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재미가 아닙니다. 목숨건 사명입니다. 능력을 받아야되기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행14: 22)~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하고
단시간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선교가 유행을 탑니다.
중국이 개방개혁을 했을때 중국선교가 봇물을 이루더니 그 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로 옮겨갔고 지금은
아프리카가 대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선교는 형편에 맞추면 않됩니다. 제일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빚있다고 해서 후원이 그치거나 줄여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많이 울었고 울고 있습니다.
적진의 군인에게 보급품을 않주면 어찌되나요? 교회가 빚내야 할 일이 이 일입니다.
대체로 선교사들이 조국에 들어오면 오히려 선교지에 온 것처럼 낯설어해 합니다.
쉼은 고사하고 빨리 용무를 마치고 선교지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선교사들을 위한 쉼의 자리와 선교사들을 위한 격려의 자리와 선교사들의 영적충전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있다해도 선교사들에겐 고비용을 지불해야겠기에 그림의 떡입니다.
주먹도 쥐었으면 펴야하듯이 활도 조였으면 풀어짐이 있듯이 선교사들에겐 이 쉼, 안정, 충전이 매우
시급합니다.행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잘 키운 선교사 한분네가 선교지에서 10~100명 이상의 제자들을 만들고 세웁니다
선교사는 교단과 교파에 속했어도 선교사들로 말미암는 현지의 제자들은 주의 백성이며 성도이고 또다른
바울이며 바나바며 디모데가 됩니다.
캄보디아 선교사는 해외주재원으로서 성회에 참석한 후 변화를 이루어 캄보디아로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17년째, 캄보디아인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워 여러과정의 주의 백성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더러는 북한으로 유학을 자처해 북한선교의 소임을 감당하고 있답니다.
기독신앙은 년수나 직분보다 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면류관이고 자랑이며 상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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