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과 아레오바고, 행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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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아덴에 도착했습니다.
행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고대 국가와 도시이름이 현대와는 큰차이가 있습니다만 '아덴'은 아테네이기에 그동안 그의 선교지가
대충적으로 그려집니다. 지중해 지역입니다.
가끔은 횟집에 가면 "과연 바울일행도 이런 회를 드시면서 선교했을까?" 미안함을 가져보곤 했습니다.
이 도시는 헬라철학의 본거지요. 숱한 신화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온갖 사상과 웅변이 난무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일행을 기다리면서 느낀점은 "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였습니다.
과연 그 분 답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정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의분'은 성도된 참 성품의 하나입니다. 국민은 자기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더하여
모두가 애국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영광 보호 본능이 성도에게는 꿈툴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불쌍함이 들어야 합니다. 곧 복음증거의 시작입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갔을 때에, 그들의 힌두교사원의 우상들과 원숭이사원은 분노심이 들어 아예 눈을 감고 다녔고 관광을 마다했습니다. 지극 정성을 드려 섬기는 그들의 종교심에 감탄했지만, 어리석음도 보아 가이드나 호텔과 식당 종업원들에게 복음증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는 것으로 끝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행17:17~18)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변론' 과 '쟁론'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주제를 갖고 주장하는 모습이고 논쟁까지 하는 모습입니다.
TV에서 이런 모습을 보곤합니다. 심하면 주먹다짐도 하곤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무명의 말장이나 아니면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으로만 인지했습니다만 바울은 그들의 호기심에
정치, 철학이 아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믿음에 확실했고 그의 열정은 이 믿음에 기인했습니다.
더 놀라운것은, 낯선도시, 낯선사람들의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복음전도에 활용했습니다.
행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쎄일즈맨이라면 유능한, 실적 좋은, 남극에서도 능히 냉장고를 팔, 능력자입니다.
드디어 그가 '아레오바고'가운데 서서 선포를 합니다.
변론과 쟁론의 승리의 결과 아닌가요? 평소 갖추어진 실력을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모습입니다.
군인은 평시에 훈련합니다. 전쟁시에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경건은, 말씀의 무장은, 기도의 훈련은, 일상에서는 모릅니다만 영적 전쟁시에 성령께서는 전도자인
나를 보호하시는 갑옷이 되고 주의 승리를 위한 실탄으로 사용하십니다.
문제는 준비되어 있느냐 입니다.
복음을 변론하고 쟁론할 현대의 아테네는 차안과 기타 모임이 될 수 있고, 그 대상은 동행자나 동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레오바고는 위기를 만난 이웃을 마주한 자리나, 병든 불신의 친구를 찾는 병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즉 말의 기술, 웅변술이나 언변력이 아닌 내용입니다.
22~31절까지를 찬찬히 살펴 보십시오.
그의 신앙고백이지만 그들에게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영적 풍성함을 칭찬했습니다.
행17:22)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아부가 아닌 실제인데 듣는 이들에게는 칭찬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예리하게 보았습니다.
영적 주소의 번지를 지적했습니다.
행17:23) ~알지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영적 새주소를 제시했습니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회개의 복음을 가리켰습니다.
행17:31)~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바울에게 아덴은 만남의 광장이나 기다림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관광이나 휴양의 도시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레오바고는 자신을 기념하거나 추억을 남기는 장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주를 나타내는 선교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행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고대 국가와 도시이름이 현대와는 큰차이가 있습니다만 '아덴'은 아테네이기에 그동안 그의 선교지가
대충적으로 그려집니다. 지중해 지역입니다.
가끔은 횟집에 가면 "과연 바울일행도 이런 회를 드시면서 선교했을까?" 미안함을 가져보곤 했습니다.
이 도시는 헬라철학의 본거지요. 숱한 신화의 탄생지이기도 합니다.
온갖 사상과 웅변이 난무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일행을 기다리면서 느낀점은 "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였습니다.
과연 그 분 답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정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의분'은 성도된 참 성품의 하나입니다. 국민은 자기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더하여
모두가 애국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영광 보호 본능이 성도에게는 꿈툴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불쌍함이 들어야 합니다. 곧 복음증거의 시작입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갔을 때에, 그들의 힌두교사원의 우상들과 원숭이사원은 분노심이 들어 아예 눈을 감고 다녔고 관광을 마다했습니다. 지극 정성을 드려 섬기는 그들의 종교심에 감탄했지만, 어리석음도 보아 가이드나 호텔과 식당 종업원들에게 복음증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는 것으로 끝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행17:17~18)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변론' 과 '쟁론'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주제를 갖고 주장하는 모습이고 논쟁까지 하는 모습입니다.
TV에서 이런 모습을 보곤합니다. 심하면 주먹다짐도 하곤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무명의 말장이나 아니면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으로만 인지했습니다만 바울은 그들의 호기심에
정치, 철학이 아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믿음에 확실했고 그의 열정은 이 믿음에 기인했습니다.
더 놀라운것은, 낯선도시, 낯선사람들의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복음전도에 활용했습니다.
행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쎄일즈맨이라면 유능한, 실적 좋은, 남극에서도 능히 냉장고를 팔, 능력자입니다.
드디어 그가 '아레오바고'가운데 서서 선포를 합니다.
변론과 쟁론의 승리의 결과 아닌가요? 평소 갖추어진 실력을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모습입니다.
군인은 평시에 훈련합니다. 전쟁시에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경건은, 말씀의 무장은, 기도의 훈련은, 일상에서는 모릅니다만 영적 전쟁시에 성령께서는 전도자인
나를 보호하시는 갑옷이 되고 주의 승리를 위한 실탄으로 사용하십니다.
문제는 준비되어 있느냐 입니다.
복음을 변론하고 쟁론할 현대의 아테네는 차안과 기타 모임이 될 수 있고, 그 대상은 동행자나 동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레오바고는 위기를 만난 이웃을 마주한 자리나, 병든 불신의 친구를 찾는 병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즉 말의 기술, 웅변술이나 언변력이 아닌 내용입니다.
22~31절까지를 찬찬히 살펴 보십시오.
그의 신앙고백이지만 그들에게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영적 풍성함을 칭찬했습니다.
행17:22)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아부가 아닌 실제인데 듣는 이들에게는 칭찬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예리하게 보았습니다.
영적 주소의 번지를 지적했습니다.
행17:23) ~알지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영적 새주소를 제시했습니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회개의 복음을 가리켰습니다.
행17:31)~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바울에게 아덴은 만남의 광장이나 기다림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관광이나 휴양의 도시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또한 아레오바고는 자신을 기념하거나 추억을 남기는 장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주를 나타내는 선교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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