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 부부, 행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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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성지 여행을 못했습니다만 고인이신 은사목사님은 성지의 전문가였습니다.
그 분이 앞장의 '아레오바고'언덕에서 동행한 여행단에게 설교한 것을 영광의 일로 여긴 일이 생각납니다.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이 유명합니다. 그 신전의 기둥양식은 백악관에서 모방해 재현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행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이곳은 아폴로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듯 당시 그 웅장했던 신전들이 현재에도 있어 그때의 신앙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는 '통 속의 철학자' 디오게너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 철학자와의 상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굴라 부부를 만난 일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성경은 사람들의 역사책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많은 지역이 언급되지만 그 지역의 특성도 기록되지 않고,
유명인도 기록되었지만 그 활동성을 세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디오게너스철학자는 이름조차도 없습니다만 아굴라는 그의 아내 부리스길라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의 유명이 곧 천국의 유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을 생각해 봅시다. 부자가 얼마나 많은 이름은 지녔겠나요? 총재,회장,위원장,의원 등
그러나 그가 죽어장사된 후 아브라함은 그를 "얘"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사는 날동안 이 땅위에서 그 이름이 잊혀져, 고작 거지로 불리웠을 것입니다만
죽을때 천사들에게서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안겼으며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길 바랍니다. 유명이 곧 출세요.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밖에 있다면 버리운자요.
잊혀진 자요. 기록되지않는 자입니다. 아덴과 고린도에 많은 사상가가 철학을 합네했어도 우상을 섬긴자들이요. 미혹케한 무리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아굴라 부부는 어떤가요? 주안에 있는 자들이기에 그들의 주 섬김도 성경역사에 기록되어 보존되었으니 천국에서는 어떠리요? 지금도 영광중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남,이들과의 만남은 여러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었고 업이 같았습니다.
행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러나 '주를 믿는 믿음'이 가장 큰 공통분모였습니다.
바울은 이 아굴라와 그 부인에게 여러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 예비하신 만남이고 인물인 셈입니다.
롬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개인적으론 이 구절에서 늘 뭉쿨함을 받곤합니다.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았나니.." 바울선교의 성공은 이런 이들의,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태도는 자기목숨의 가치를 가볍게 여긴 태도가 아니라 바울의 가치를 더 크게, 높게 여겼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요? 물론 이럼에는 상대적임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현대에는 여하한 없는 일입니다.
이상한 것은 '아굴라와 부리스길라'로 소개되었지만, 점차로 선교후반에 이르러서는 부부의 이름이 뒤바뀜이
일어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론할 수 있지만 대체로 부인된 부리스길라의 신앙이 남편된 아굴라를 앞질렀기에 그렇다는데 모아집니다. 가능합니다.
어느 가정의 신앙주인을 '신주' 라고 합니다. 우리집의 경우 내가 신주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끌려가던 신앙이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성숙해서 끌고가는
이상이 된 경우입니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동기 목사님은 대기업 CEO 출신입니다. 자기부인을 주일마다 교회로 데려다 주고 자신은 교회 주차장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어느 주일 기다리기 심심해서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복음을 듣고 변화된 것입니다.
소명까지 받아 그 좋은 직장과 보장된 미래를 박차고 나오니 주변이 말렸습니다.
결국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으니 부인과 바뀌어진 신앙이 된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에게는 행24:24~26절에 나오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가르치는데부터 파생합니다.
아굴라가 가장으로써 업에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면 부리스길라는 그 이면에서 복음선교에 남편보다 적극성을
가졌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본래는 그저 부부가 장막 만드는 일에 성실했었지만, 바울을 만나 후 삶의 가치에 변화받아 땅의 일보단 하늘의 일에 매진하게 되었나 봅니다.
이 모습이 성화이고 이 모습이 천국을 침노하는 모습입니다.
아굴라, 그럼에도 개의하지 않고 외조든 내조든 아님 바울에게 동역이든 충성된 인물이었습니다.
돈밖에, 혹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주밖에 모르는 사람에겐 여상한 일입니다.
그 분이 앞장의 '아레오바고'언덕에서 동행한 여행단에게 설교한 것을 영광의 일로 여긴 일이 생각납니다.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이 유명합니다. 그 신전의 기둥양식은 백악관에서 모방해 재현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행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이곳은 아폴로신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듯 당시 그 웅장했던 신전들이 현재에도 있어 그때의 신앙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는 '통 속의 철학자' 디오게너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 철학자와의 상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굴라 부부를 만난 일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성경은 사람들의 역사책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많은 지역이 언급되지만 그 지역의 특성도 기록되지 않고,
유명인도 기록되었지만 그 활동성을 세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디오게너스철학자는 이름조차도 없습니다만 아굴라는 그의 아내 부리스길라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의 유명이 곧 천국의 유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을 생각해 봅시다. 부자가 얼마나 많은 이름은 지녔겠나요? 총재,회장,위원장,의원 등
그러나 그가 죽어장사된 후 아브라함은 그를 "얘"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사는 날동안 이 땅위에서 그 이름이 잊혀져, 고작 거지로 불리웠을 것입니다만
죽을때 천사들에게서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안겼으며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길 바랍니다. 유명이 곧 출세요.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밖에 있다면 버리운자요.
잊혀진 자요. 기록되지않는 자입니다. 아덴과 고린도에 많은 사상가가 철학을 합네했어도 우상을 섬긴자들이요. 미혹케한 무리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아굴라 부부는 어떤가요? 주안에 있는 자들이기에 그들의 주 섬김도 성경역사에 기록되어 보존되었으니 천국에서는 어떠리요? 지금도 영광중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남,이들과의 만남은 여러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었고 업이 같았습니다.
행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러나 '주를 믿는 믿음'이 가장 큰 공통분모였습니다.
바울은 이 아굴라와 그 부인에게 여러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 예비하신 만남이고 인물인 셈입니다.
롬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개인적으론 이 구절에서 늘 뭉쿨함을 받곤합니다.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았나니.." 바울선교의 성공은 이런 이들의, 이런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태도는 자기목숨의 가치를 가볍게 여긴 태도가 아니라 바울의 가치를 더 크게, 높게 여겼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요? 물론 이럼에는 상대적임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현대에는 여하한 없는 일입니다.
이상한 것은 '아굴라와 부리스길라'로 소개되었지만, 점차로 선교후반에 이르러서는 부부의 이름이 뒤바뀜이
일어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론할 수 있지만 대체로 부인된 부리스길라의 신앙이 남편된 아굴라를 앞질렀기에 그렇다는데 모아집니다. 가능합니다.
어느 가정의 신앙주인을 '신주' 라고 합니다. 우리집의 경우 내가 신주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끌려가던 신앙이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성숙해서 끌고가는
이상이 된 경우입니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동기 목사님은 대기업 CEO 출신입니다. 자기부인을 주일마다 교회로 데려다 주고 자신은 교회 주차장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어느 주일 기다리기 심심해서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복음을 듣고 변화된 것입니다.
소명까지 받아 그 좋은 직장과 보장된 미래를 박차고 나오니 주변이 말렸습니다.
결국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으니 부인과 바뀌어진 신앙이 된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에게는 행24:24~26절에 나오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가르치는데부터 파생합니다.
아굴라가 가장으로써 업에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면 부리스길라는 그 이면에서 복음선교에 남편보다 적극성을
가졌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본래는 그저 부부가 장막 만드는 일에 성실했었지만, 바울을 만나 후 삶의 가치에 변화받아 땅의 일보단 하늘의 일에 매진하게 되었나 봅니다.
이 모습이 성화이고 이 모습이 천국을 침노하는 모습입니다.
아굴라, 그럼에도 개의하지 않고 외조든 내조든 아님 바울에게 동역이든 충성된 인물이었습니다.
돈밖에, 혹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주밖에 모르는 사람에겐 여상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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