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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은, 행8:39~40 > 나의간증

주의 성령은, 행8: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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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19 16:35 조회 2,2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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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상담 프로를 보면 부부가 살맞대고 살면서도 피차 모른 경우가 문제의 근본입니다.
한 부인은  남편이 말이 없고 행동으로만 한답니다.
그 남편은 부인이 행동은 없이 말만 한답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부인은 청각장애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머니를 이해 시키려 온갖 상황을 말로써,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자존심이 쎈편이며 말은 어눌했습니다. 또한 '사과'라는 단어가 '자존심의 굴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사과라는 단어가 '미안해'의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충분한 이해를 받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주님을 안다지만 잘모릅니다.
롬10:2~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우리의 착각은 주를 자신처럼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우린 주를 물질로 섬깁니다. 그러나 주는 우리 몸과 삶의 제물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나요?
내시에게 세례까지 베푼 빌립을 홀연히,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어쩌면 엘리야처럼 회리바람으로 몰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39절)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그런 후 아소도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0절)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곡식을 떠는 소의 멍에를 씌우지 말라하셨던 주께서 빌립을 위해서 왜 내시와의 교제를 허락치 않고
급하게 이끌어 가셨을까? 입니다.
작은 답례나 짧은 휴식을 왜 주시지 않았을까? 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치유의 감사사례를 하고자했으나 사양받았습니다.
잠시 후 떠나간 나아만에게 종이 가서 사례를 챙겼다가 문둥병이 피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엘리사는 하나님의 의를 알고 순종한 반면 종은 여전히 인간적인 속물정신의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빌립에 대한 성령의 위로는 내시로 말미암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성령이 친히 하신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 아닌가요?
또한 그 팔에 붙잡혀서 "여러 성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아닐까요?

빌립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살찐, 번드르한 모습은 아닐 듯 합니다.
광야의 모세 같고 엘리야와 엘리사 같고 세레요한의 모습 같고 곧 갈리리를 다니신 주의 모습 같았을 것입니다.
마치 인도의 가난한 수행자, 광대뼈는 나오고 옷은 초라하고 그러나 눈빛은 지혜가 있고 얼굴은 힘있으나 인자한 미소가 있는 등
땅의  위로가 아닌 하늘 위로를 받는 진정한 모습이 있을 듯합니다.

수십년 전의 쎄일즈 맨들은 정숙해야 했습니다.
계약서에 싸인하는 펜은 필히 고급사양품이어야만 했습니다.
상품과 쎄일즈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복음을 전하는, 성령께 붙잡힌 종의 모습은 적어도 속물과 속세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공신학과 번영신학 탓입니다.
세상 것이 많고 좋아야만 은혜라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하는 주의 지시와 보호와 인도가 없습니다.
엘리야는 큰비를 피해 뛰는데 왕의 마차보다 앞서 뛰는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성령의 위로요, 권능입니다.
아모스서 말씀처럼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힘써 바로 알아야 바로 섬길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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