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힘쓰더라, 행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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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제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는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불편할 다락방에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적어도 이들에게는 3박자가 맞았습니다.
분명히 말하면 성령을 그냥 기다리지만 않았습니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더불어
외식함이 없이 진정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대충 기도하지않고 , 온전히 기도했습니다.
이쯤되면 죽은 사람도 일어날 성 싶습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금요기도회 인도는 언제나 부목사 차지였습니다.
설교만 담임목사님이 하시고 그 담임목사님은 당신방으로 들어가시면
남은 시간의 기도는 성도들과 부교역자들이 했습니다.
이게 모순이라고 느껴 당회장이 된 후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극동방송 소망의 기도를 꽤나 오래했습니다.
할수록 회의를 느끼는 일이 있었는데
강사인 나는 그 시간을 위해서 늘 기도로 무장하고 있는 반면 기도 신청자들은
너무 쉽게 기도받는다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다급한 사정속에서 신청하는 일이야 이해되지만
전화도 아닌 문자로 기도 요청하는 일에는 못마땅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신청자의 음성도 듣지못한체 기도하는 일은 기도를
들이시는 주님께 결례로 여겨졌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도는 모든 성도의 특권이고 의무지만
소망의 기도 담당 목사는 모든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판단되었습니다.
은사와 기술이 요청되는 기도 방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일은 쉽질않습니다.
요즘처럼 빠름을 추구하고 남이 해주는데 익숙한 시대에는 고역일 듯합니다.
교회의 기도회 인원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듯 합니다.
야구장과 축구장과 동네 산책길에는 넘치는 인파가 있어도
기도의 자리와 시간에는 소수뿐입니다.
그러기에 부흥의 시대와 유흥의 시대의 차이는 현명합니다.
미육군 사관학교를 웨스트포인트라고 합니다.
서쪽의 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루던, 그 때에 허드슨 강변 S로 굽이굽이 치는 지점이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워싱턴장군은 이곳으로 본부를 옮겼습니다.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되었습니다.
그 곳에 군사요람이 세워진 것이랍니다.
무엇을 중요히 여기느냐? 안목이고 성향의 차이입니다.
자본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나 외모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있습니다.
한동안 부흥사경회가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도가 능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 사는 동네에도 좋은 교회당이 기도회 시간에는 캄캄합니다.
삼일 기도회, 금요기도회, 철야 기도회, 산상 기도회,등이 있건만
요즘은 다른 회로 충만합니다.
ㅇㅇ 선교축구회, ㅇㅇㅇ 배드민턴회,
성도들이 기도를 못합니다.
입갖고 잘먹고 남 잘타박하면서도 기도에는 벙어리입니다.
이쯤이면 성령이 오실리 만무입니다.
기도도 훈련이기에 배워야 되지만
이론만이 아닌 주님이 제자들에게 본을 보시셨던 것처럼
본을 보이는 성숙한 어른이 필요합니다.
80년대까지 있었던 저 삼각산의 기도소리가 문득 그립습니다.
그때는 교회들이 작고 가난했어도 위엄이 있었습니다.
회복할 수 있을련지요?
돈달라는 기도보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제가 어찌하여 주 모시는 성전이 될 수 있나요?"하며 가슴을 찢는
기도가, 통회와 자백의 기도자가 과연 있을까요?
의인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에 멸망했다면,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당신과 나는? 신앙에 무엇이 파워이고 포인트인가요?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성령을 기다리라는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불편할 다락방에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적어도 이들에게는 3박자가 맞았습니다.
분명히 말하면 성령을 그냥 기다리지만 않았습니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더불어
외식함이 없이 진정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대충 기도하지않고 , 온전히 기도했습니다.
이쯤되면 죽은 사람도 일어날 성 싶습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금요기도회 인도는 언제나 부목사 차지였습니다.
설교만 담임목사님이 하시고 그 담임목사님은 당신방으로 들어가시면
남은 시간의 기도는 성도들과 부교역자들이 했습니다.
이게 모순이라고 느껴 당회장이 된 후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극동방송 소망의 기도를 꽤나 오래했습니다.
할수록 회의를 느끼는 일이 있었는데
강사인 나는 그 시간을 위해서 늘 기도로 무장하고 있는 반면 기도 신청자들은
너무 쉽게 기도받는다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다급한 사정속에서 신청하는 일이야 이해되지만
전화도 아닌 문자로 기도 요청하는 일에는 못마땅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신청자의 음성도 듣지못한체 기도하는 일은 기도를
들이시는 주님께 결례로 여겨졌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도는 모든 성도의 특권이고 의무지만
소망의 기도 담당 목사는 모든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판단되었습니다.
은사와 기술이 요청되는 기도 방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일은 쉽질않습니다.
요즘처럼 빠름을 추구하고 남이 해주는데 익숙한 시대에는 고역일 듯합니다.
교회의 기도회 인원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듯 합니다.
야구장과 축구장과 동네 산책길에는 넘치는 인파가 있어도
기도의 자리와 시간에는 소수뿐입니다.
그러기에 부흥의 시대와 유흥의 시대의 차이는 현명합니다.
미육군 사관학교를 웨스트포인트라고 합니다.
서쪽의 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루던, 그 때에 허드슨 강변 S로 굽이굽이 치는 지점이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워싱턴장군은 이곳으로 본부를 옮겼습니다.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되었습니다.
그 곳에 군사요람이 세워진 것이랍니다.
무엇을 중요히 여기느냐? 안목이고 성향의 차이입니다.
자본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나 외모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있습니다.
한동안 부흥사경회가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도가 능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 사는 동네에도 좋은 교회당이 기도회 시간에는 캄캄합니다.
삼일 기도회, 금요기도회, 철야 기도회, 산상 기도회,등이 있건만
요즘은 다른 회로 충만합니다.
ㅇㅇ 선교축구회, ㅇㅇㅇ 배드민턴회,
성도들이 기도를 못합니다.
입갖고 잘먹고 남 잘타박하면서도 기도에는 벙어리입니다.
이쯤이면 성령이 오실리 만무입니다.
기도도 훈련이기에 배워야 되지만
이론만이 아닌 주님이 제자들에게 본을 보시셨던 것처럼
본을 보이는 성숙한 어른이 필요합니다.
80년대까지 있었던 저 삼각산의 기도소리가 문득 그립습니다.
그때는 교회들이 작고 가난했어도 위엄이 있었습니다.
회복할 수 있을련지요?
돈달라는 기도보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제가 어찌하여 주 모시는 성전이 될 수 있나요?"하며 가슴을 찢는
기도가, 통회와 자백의 기도자가 과연 있을까요?
의인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에 멸망했다면,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당신과 나는? 신앙에 무엇이 파워이고 포인트인가요?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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