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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이들, 행2:5~13 > 나의간증

조롱받는 이들, 행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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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13 19:09 조회 2,2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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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각 방언이 나왔습니다.
알 수 없는 방언이 아니라 고장따라 알아듣는 방언이었습니다.
8절) 우리가 우리의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말은 쉽게 배울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배우지 않고 했습니다.
성령이 말을 그 입에다 넣어주셨기에 가능합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 구음이 달라져 흩어진 사건이후 처음으로 흩어짐에서 끼리끼리 모임의 반대적 역사가
이루워진 것입니다.
성령은 이토록 하나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 현상을 자신들의 식으로 이해했는데 "새술에 취하였더라"
그리고 조롱도 했습니다.
낮시간이었기에 할 일 없는, 일하기 싫어한 게으른 자들로 치부했나 봅니다.
성령충만은 마치 술취함과도 같습니다.
다만 술냄새만 없을 뿐입니다.
사람따라 얼굴이 벌게지기도 하고 하얗게되기도 하고 조용했던 사람이 행동이 커지고
반대로 큰 행동의 사람이 조용해 지고,
술 취하면 대체로 기분이 Up되듯이 그렇고, 술 취하면 술만 찾듯이, 그래서 술있는 곳을 찾아
장소, 시간, 거리의 개념이 없듯이 성령에 취하면 더 성령을 구합니다.
그러나 다른 게 있습니다. 숙취가 없습니다. 주사나 머리나 속 불편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명쾌하고 상쾌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그동안 소극적이었다가 적극적 행동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중12사도들은 더 적극적이어서
14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성령은 일체감을 줍니다.
이들이 이러기를 작심하고 연습하지 않았습니다만 함께 행동하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처럼 하나되게 하십니다.
교회의 여러 문제는 문제가 근본이유가 아니라 성령이 부재한 이유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커도 일체감이 있습니다.
반대로 시끄러운 교회는 작아도 그렇습니다. 시스템의 차이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대강으로도 살펴보십시오.
내용이 어떤가요? 성령이 오신 당위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확실성을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설교입니다. 주제가 단순히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입니다.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선포입니다.
아, 부러운 설교입니다.
유식한 설교를 해야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설교자의 귀감입니다.
신비주의라는 평가에서 지금은 새로운 평가를 받는 초기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설교시간이 되기까지 설교단 밑에서 기도하기를 감동이 오면 오는 만큼 설교하고 아니면 더 기다리고,

설교의 주제는 설교자의 지식자랑도 아니고 온갖 세상정보 소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경을 줄줄이 꿴다고 해서
설교도 아니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로 설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삼가하게 됩니다.
나중에 등장하지만 성령과 설교와 주제는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령이 계실때는 이 설교가 복음이지만 현대처럼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연출하고 자기 귀가 가려워
시원함 바를 듣기 원할때에는 졸리운, 진부한 말이 될뿐입니다.
점점 짧은 설교를 주문하는 시대, 재미있는 설교에 길들인 성도, 그리고 설교자!
스마트시대에 스마트함이 복음을 왜곡시키고 있다면 기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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