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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더하는 은혜, 행2:43~47 > 나의간증

날마다 더하는 은혜, 행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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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15 18:18 조회 2,307회 댓글 0건

본문

사회주의는 평등을 주창합니다.
그 좋은 이념을 갖었지만 결국 몰락했습니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명령합니다.
종교는 수용합니다.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44~45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이상주의가 실현되었습니다.
큰자가 작은 자를 군박하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김으로 되는 천국이 구현되었습니다.
어떻게요? 명령으로? 수용으로?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원리를 간과한체 그저 이상적 체제만 추구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진리의 영이 되셔서 깨우치고 전하고 듣게도 하시지만
화목케하십니다.
기사와 표적이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님 영광"입니다.
목표는 '하나님 찬미"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온유와 겸손은 필수입니다.

가정의 복음화, 지역, 시대의 복음화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성품과 목표와 목적를 지닌 사람들이 하나되어
목적과 목표에 통일을 이루려면 주의 성품, 곧 주의 영인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칭송을 받으니'를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과 비교해 보십시오. 어떤가요?
교회당이 비는 이유는 시대의 어려움만이 아닙니다.
그 시대는 정치적으로 더 어려웠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똑똑해서만도 아닙니다.
그 시대도 철학이 꽃피우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날마다 더하고 더하는 은혜를 입은 반면,
현대는 떠나가는 비극이 왔습니다.

언제나 성도는 주의 향기이고 편지입니다.
그들은 양호했다면 지금은 불량하다는 밖에 달리 이유가 없습니다.

나눠줄 수 있음과 성전에 모이기를 기뻐하는 신앙,
나만이, 나부터 채워야 하고 모이기는 폐하는 신앙, 천양지차입니다.

그 차이는 경제력, 정치력, 리더쉽의 차이가 아니라
영성의 차이입니다.
43절)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들로 인하여,," 부러운 사안입니다.
리더가 좋습니다. 그랬기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의 결국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을 경험한 리더와 주님을 들은 리더와 주님을 모르는 리더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무지가 망칩니다.

이때의 성령받은 성도들은 이러한 성령받은 사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유유상종이기에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친밀함도 이루웠습니다.

더러는 초대교회였기에 이래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초만 좋은 건물은, 다른 것은 다 부실한가요?
오히려 기초가 좋은 건물이기에 다른 것도 좋은 건물이 될 순 없을까요?
그래서 교회와 신앙은 되돌아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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