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일, 행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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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은 공개처형을 즐겨 집행하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여 충성을 강요시키기 위해서 랍니다.
그러나 아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부부의 망령됨이 자신들의 죽음을 자초했고 하나님을 속인다는 불경건에, 그럴수 없다는
교회 머리가 되시는 주의 경고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 사건으로서 주께 향한 경외감을 고취시켰습니다.
11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그러므로 이 사건은 주의 나라와 통치의 원리요. 법칙이요. 귀감됩니다.
누구든 주를 속일 수 없으며 만홀히 여겨서 않되며 시험해서도 않됩니다.
이 통치원리는 주의 재림시까지 유효할 줄 믿습니다.
당장에 죽었다 안죽었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자들이요.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의 반대로는 부르스길라와 아굴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부는 사도바울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에게 다락방과 대야와 촛대를 제공한, 주도면밀했던 여인과 그녀의 늙은 남편도 상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공궤했습니다.
죽은 부부는 베드로를 속인다고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속였고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지나친 물욕에 사단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3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절)~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 사건은 친히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신 일도 되지만 그 종들을 세우신 일이기도 합니다.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때에 주는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스테반을 맞이하며 대적 원수들을
확인하려 하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논술력이나 웅변력 보다 이와 같은 신실한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영권이며 주의 종으로서의 임명장입니다.
이 영권은 배워서 되질 않습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쎄미나에서 전수하고 받고가 아닙니다.
노련한 형사의 지관력과도 다릅니다.
5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
성령께 붙잡힘입니다.
주님은 지난 날, 이 영권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마18:20)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하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늘 갈멜산에서 머물렀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였습니다.
식물채집,곤충채집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영권을 갈고닦은 줄 믿습니다.
엘리사는 그럼에도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는데 어려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얻었습니다.
왜 갑절의 영감을 구했을까요? 패역함이 갑절로 더 심화됐기 때문은 아닌가요?
하물며 지금은 갑절의 곱배기를 구해야 할텐데,,
선배목사들은 골방에서 기도하고 책방에서 공부하고의, 균형을 이루라했습니다만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는 세태입니다.
이쯤되니 책망은 커녕 책망을 받고 아나니와 삽비라는 설쳐대고 있습니다.
부부가 급사했다는 사건은 9시에 뉴스에도 나올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살인 혐의자나 명예훼손등으로 입건되지 않은 것이 성령이 주도한 결과입니다.
1907년 대부흥기때 길선주목사님부터 회개가 터졌습니다.
장로시절 주 기철목사댁을 살핀다면서 착복한 죄가 나왔습니다.
그 후 간통자, 살인자 등이 예배마다 자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경찰도 가정도 난리나 파탄이 나지않고
화평과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위원회나 사람이 아닌 성령의 행하신 일입니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경외심이 합쳐져 두려운 믿음이 된것입니다.
13~14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무리더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여 충성을 강요시키기 위해서 랍니다.
그러나 아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부부의 망령됨이 자신들의 죽음을 자초했고 하나님을 속인다는 불경건에, 그럴수 없다는
교회 머리가 되시는 주의 경고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 사건으로서 주께 향한 경외감을 고취시켰습니다.
11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그러므로 이 사건은 주의 나라와 통치의 원리요. 법칙이요. 귀감됩니다.
누구든 주를 속일 수 없으며 만홀히 여겨서 않되며 시험해서도 않됩니다.
이 통치원리는 주의 재림시까지 유효할 줄 믿습니다.
당장에 죽었다 안죽었다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자들이요.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의 반대로는 부르스길라와 아굴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부는 사도바울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에게 다락방과 대야와 촛대를 제공한, 주도면밀했던 여인과 그녀의 늙은 남편도 상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로서 공궤했습니다.
죽은 부부는 베드로를 속인다고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속였고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지나친 물욕에 사단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3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절)~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 사건은 친히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신 일도 되지만 그 종들을 세우신 일이기도 합니다.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때에 주는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스테반을 맞이하며 대적 원수들을
확인하려 하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논술력이나 웅변력 보다 이와 같은 신실한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영권이며 주의 종으로서의 임명장입니다.
이 영권은 배워서 되질 않습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쎄미나에서 전수하고 받고가 아닙니다.
노련한 형사의 지관력과도 다릅니다.
5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
성령께 붙잡힘입니다.
주님은 지난 날, 이 영권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마18:20)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하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늘 갈멜산에서 머물렀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였습니다.
식물채집,곤충채집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영권을 갈고닦은 줄 믿습니다.
엘리사는 그럼에도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는데 어려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얻었습니다.
왜 갑절의 영감을 구했을까요? 패역함이 갑절로 더 심화됐기 때문은 아닌가요?
하물며 지금은 갑절의 곱배기를 구해야 할텐데,,
선배목사들은 골방에서 기도하고 책방에서 공부하고의, 균형을 이루라했습니다만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는 세태입니다.
이쯤되니 책망은 커녕 책망을 받고 아나니와 삽비라는 설쳐대고 있습니다.
부부가 급사했다는 사건은 9시에 뉴스에도 나올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살인 혐의자나 명예훼손등으로 입건되지 않은 것이 성령이 주도한 결과입니다.
1907년 대부흥기때 길선주목사님부터 회개가 터졌습니다.
장로시절 주 기철목사댁을 살핀다면서 착복한 죄가 나왔습니다.
그 후 간통자, 살인자 등이 예배마다 자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경찰도 가정도 난리나 파탄이 나지않고
화평과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위원회나 사람이 아닌 성령의 행하신 일입니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경외심이 합쳐져 두려운 믿음이 된것입니다.
13~14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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