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증인, 빌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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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신 하나님을 세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경우가 있나요?
1) 빌립보교회에 대한 애정
사도에게는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첫사랑의 교회입니다.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세운 첫번째의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행16:11~15)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첫딸이나 아들을 귀여워하는 이유도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간 곳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만난 루디아와, 귀신들린 사람을 낫게해주고도 감옥에 가서
만난 간수와 더불어 세워진, 사건이 많고 추억이 있고 정이 얽힌 고장의 교회였습니다.
이쯤되면 세월이 가도 애정이 갑니다.
나는 마음에 꼭든 만년필을 오래 전에 분실했습니다.
지금도 찾습니다.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도는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간구할 때마다
'항상'간구하게 되었습니다.
2) 빌립보교회 자세
사랑에는 짝사랑도 있습니다만
이런 사랑에 부응하고자 빌립보교회가 사도에게 향한 사랑도 극진하였습니다.
빌1:7) ~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사도를 깊게 신뢰하며 그 사랑에 크게 응답한 모습입니다.
신뢰와 사랑을 측정하려면 고난의 동참여부가 확증합니다.
고맙게도 사도와 교회는 피차 일반이었고 피차 고무되었으며 하나님께도 자연 영광이 된 것 입니다.
사도) 사랑의 심장으로 ,"기도하노라" 하였고
교회) "너희 간구"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언제나 쓴뿌리는 혼자만이 아닌 피차를 망하게 하여도 이와 같은 사랑의 기운은 물론
열매는 피차를 살리웁니다.
후대의 우리도 이 모습을 볼 때 어떤가요? 훈훈함의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3) 사랑의 열매
열매만큼 중요한 것은 사랑의 순서입니다.
교회가 사도를 사랑하기 이전에 사도가 교회를 먼저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치받는 경우 보단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양이 목자를 사랑하기보단 목자가 양을 사랑했고 그 사랑에 양이 안전하여 털과 젖으로
보답하는 경우가 사랑의 순서입니다.
이 보다 큰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미친 것 입니다.
이제 성도되고 양되는 우리는 성령을 말미암아 보답합니다.
당연한 충성이고 헌신이고,, 그런데 여기에도 또 상이 주어집니다.
줄 사랑이 아닌 받을 사랑을 계수하는 자는 ,곳은, 갈등이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는 큰 사랑을 이미 받았기에 받을 사랑을 계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랑이 답지한다면 받을 사랑을 계수하지 않은만큼 당연시 여기지않고
보너스로 여겨 감사가 갑절로 넘칩니다.
결론) 성령충만하면 누구나 언제든지 '사랑의 의무'를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마귀의 욕심에 붙잡혀 '사랑의 권리'만 주장합니다.
이럴때 참 힘듭니다.
이런 사람,같이 살아도 피곤한 원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경우가 있나요?
1) 빌립보교회에 대한 애정
사도에게는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첫사랑의 교회입니다.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세운 첫번째의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행16:11~15)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첫딸이나 아들을 귀여워하는 이유도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간 곳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만난 루디아와, 귀신들린 사람을 낫게해주고도 감옥에 가서
만난 간수와 더불어 세워진, 사건이 많고 추억이 있고 정이 얽힌 고장의 교회였습니다.
이쯤되면 세월이 가도 애정이 갑니다.
나는 마음에 꼭든 만년필을 오래 전에 분실했습니다.
지금도 찾습니다.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도는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간구할 때마다
'항상'간구하게 되었습니다.
2) 빌립보교회 자세
사랑에는 짝사랑도 있습니다만
이런 사랑에 부응하고자 빌립보교회가 사도에게 향한 사랑도 극진하였습니다.
빌1:7) ~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사도를 깊게 신뢰하며 그 사랑에 크게 응답한 모습입니다.
신뢰와 사랑을 측정하려면 고난의 동참여부가 확증합니다.
고맙게도 사도와 교회는 피차 일반이었고 피차 고무되었으며 하나님께도 자연 영광이 된 것 입니다.
사도) 사랑의 심장으로 ,"기도하노라" 하였고
교회) "너희 간구"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언제나 쓴뿌리는 혼자만이 아닌 피차를 망하게 하여도 이와 같은 사랑의 기운은 물론
열매는 피차를 살리웁니다.
후대의 우리도 이 모습을 볼 때 어떤가요? 훈훈함의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3) 사랑의 열매
열매만큼 중요한 것은 사랑의 순서입니다.
교회가 사도를 사랑하기 이전에 사도가 교회를 먼저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치받는 경우 보단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양이 목자를 사랑하기보단 목자가 양을 사랑했고 그 사랑에 양이 안전하여 털과 젖으로
보답하는 경우가 사랑의 순서입니다.
이 보다 큰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미친 것 입니다.
이제 성도되고 양되는 우리는 성령을 말미암아 보답합니다.
당연한 충성이고 헌신이고,, 그런데 여기에도 또 상이 주어집니다.
줄 사랑이 아닌 받을 사랑을 계수하는 자는 ,곳은, 갈등이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는 큰 사랑을 이미 받았기에 받을 사랑을 계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랑이 답지한다면 받을 사랑을 계수하지 않은만큼 당연시 여기지않고
보너스로 여겨 감사가 갑절로 넘칩니다.
결론) 성령충만하면 누구나 언제든지 '사랑의 의무'를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마귀의 욕심에 붙잡혀 '사랑의 권리'만 주장합니다.
이럴때 참 힘듭니다.
이런 사람,같이 살아도 피곤한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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