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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목적, 빌1:20~28 > 나의간증

그리스도인의 목적, 빌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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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03 15:47 조회 2,528회 댓글 0건

본문

흔히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은 막을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이 보다 더 한 경우는 '미친 경우' 입니다.

1)사도의 목표
사도에게 있어서 좋아함을 떠나 미친 경우의 일은 무엇같나요?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마치 미친 듯 한 이유가 있습니다.
갈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아래 있는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라.

특별히 그는 유대교의 율법에 매였다가 복음으로 해방된 은혜안에 있음을 실감했기에
복음의 중심되신  예수그리스도는 물론 전도에도 최고의 적극성을 갖게된 것입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에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따라 가노라

이러한 사도에게 사랑의 대상은, 교회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92세된 노파는 별세한 큰아들을 잃고 가슴앓이를 오랫동안했습니다.
결국은 내적 치유가 되었지만 아직도 50년전의 아들이 어렸을때 입었던 T셔츠를 입고 살고 있습니다.
지나친 아들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그러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도는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교회를 향한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곧 교회만이 하나님나라의 우주적 중심으로 본 것입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창세기의 선악과와 같습니다.
곧 하나님 통치,영광의 핵입니다.

얼마나 많은 기관들이 있습니니까?
그러나 이런 기관들은 만물안의 한 귀퉁일 뿐, 하나님나라의 중심이 될 수 없었음을 확신했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의 섭리면에서 통일의 합일점이었던 것입니다. 아 멘
그 증거는 주님이 친히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2) 사도의 유익
이러한 사도에게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좀 더 안락한 삶인가요? 좀 더 장수하는 일인가요?
그의 최고된 가치는 개인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초월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런 사도가 총회장이 된다면 분열이 없을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된다면 어떨까요?

오늘의 보편적인 신앙과 비교가 되십니까?
주 예수를 믿음으로서 '경건의 이익'을 추구하는 신앙과 얼마나 다른지요?
대다수는 자신 혹은 집단의 유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모습은 크고 작음의 신앙적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 차이 입니다.
경건의 이익을 추구하는 신앙에는 자신이 죽고자 함이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을 기억하나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뇌가 아닌 거듭남의 진정성입니다.

주가 죽고 내가 살고자함과 내가 죽고 주가 살리심을 받는 차이는 다른 차이입니다.
본래 기독신앙은 이렇습니다.
그럼에도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내안의 그리스도가 살기 때문입니다. 희한한 일인데 곧 '성령의 생명의 법칙'인 까닭입니다.
사도행전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죽지않고 주의 계시가 왔습니다.

유감되게 현대는 이 생명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 타령'보단 '돈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섬기는게 아니라 자신과 자기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당연, 계시가 없습니다. 그러니 방자하고 등

3) 사도의 희망
사도는 잘 먹고 잘 살 것만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채로 살기를 희망하여 소신으로 삼고있습니다.
곧 교회의 발전과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는, 잠시 더 사는 것을 꼭 고집하기보단
오히려 죽는 것은 물론 희생물로(관제물)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결론) 이 모습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며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참된 주의 종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닮았는지요?
이런 소원이라도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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