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빌4;8~9
페이지 정보
본문
사도 바울은 유독 사랑하는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자신의 온전한 보화들을 계속 나누워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무엇인가요?
" 나처럼 믿어라" "나처럼 살아라" 아닌가요?
빌1:40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1) 종말로
사도가 "종말로" 한것은 그의 종말론적 사상 때문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또는 "참으로"의 의미입니다.
일종의 결론도입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외적으로 '강조'하는 수사기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빌립보서의 결론단계이기도 하며 '주안단계'이기도 합니다.
서론에 사도가 "보화'를 나누워 줍니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되며, 경건하며,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특히 "이것들을 생각하라"는 오늘의 제목인 만큼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빌립보교회, 참 훌륭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윗사안의 성덕을 생각하라는 것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격려요, 칭찬입니다.
그럼에도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라"는 말처럼 한번 더 상기시킵니다.
현대에 이런 권면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부족한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않은 경우일 것입니다.
실제 안티기독교의 활동의 목적이 비록 마귀적일지라도 그들의 비난과 지적은, 대다수 교회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바로 위의 성덕 부족입니다.
물론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안티와 활동도 있으나, 부끄럽게도 비복음적인 교회와 성도,그리고 신앙에 대한
마귀의 책망도 있습니다.
불의한 발람선지자를 책망한 것은 나귀였잖나요? 아주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런데도 화강석처럼 마음이 굳어 깨닫지 못하니 양심에 화인을 맞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혹은 이런 자가 세상에만 있겠나요?
발람은 어디 소속이던가요?
현대교회의 상실은 영권입니다.
초대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내게 있는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던
바의 반대적 모습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입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영권은 시대와 교회의 열매인데 뿌리가 부실하면 맺을 수 없습니다.
복음적이지 못한 부실씨앗, 부실 뿌리, 그리고 부실한 열매,혹은 없는 무화과 나무같은 경우 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상황인데도 알지 못합니다.
눈 먼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영권 상실이 사회적으로 빛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늘어도 교인이 감소했습니다.
어제는 신림동 왕성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소식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유명했지만 훌륭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들아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교회가 자성해야 한다." 고, "교회가 자기만의 천국이라"고,
3)무엇에든지
본문에서 가장 강조된 단어는 무엇인가요? '무엇에든지'
일상의 모든 삶속에서 입니다. 구체적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래에서, 여행지에서,
흔히 관행이라는 것을 따릅니다만 성도의 관행이 새로 도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의 자유가 공화를 이루는데 기여함같이 개인,개교회의 모습이 하나님공화국을
이룸을 알아야 합니다.
피차 격려하고 피차 감시해야 합니다.
3) 행하라
집에서 키우는 개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왔습니다. 개치곤 사회성이 부족합니다.
동물이지만 어미 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티나는 것입니다.
목사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선배밑에서 실천신학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선배도 있고 스승도 있어야 합니다.
성덕을 본받아야 합니다.고난을 받아 들이는 신앙도 배워야 합니다.
나라사랑과 교회와 이웃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비로써 행함이 이루워 집니다.
결론) 평강은 골방에서 잉태되어도 일상의(무엇에든지) 삶에서 영급니다.
본문은 무엇인가요?
" 나처럼 믿어라" "나처럼 살아라" 아닌가요?
빌1:40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1) 종말로
사도가 "종말로" 한것은 그의 종말론적 사상 때문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또는 "참으로"의 의미입니다.
일종의 결론도입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외적으로 '강조'하는 수사기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빌립보서의 결론단계이기도 하며 '주안단계'이기도 합니다.
서론에 사도가 "보화'를 나누워 줍니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되며, 경건하며,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특히 "이것들을 생각하라"는 오늘의 제목인 만큼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빌립보교회, 참 훌륭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윗사안의 성덕을 생각하라는 것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격려요, 칭찬입니다.
그럼에도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라"는 말처럼 한번 더 상기시킵니다.
현대에 이런 권면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부족한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않은 경우일 것입니다.
실제 안티기독교의 활동의 목적이 비록 마귀적일지라도 그들의 비난과 지적은, 대다수 교회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바로 위의 성덕 부족입니다.
물론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안티와 활동도 있으나, 부끄럽게도 비복음적인 교회와 성도,그리고 신앙에 대한
마귀의 책망도 있습니다.
불의한 발람선지자를 책망한 것은 나귀였잖나요? 아주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런데도 화강석처럼 마음이 굳어 깨닫지 못하니 양심에 화인을 맞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혹은 이런 자가 세상에만 있겠나요?
발람은 어디 소속이던가요?
현대교회의 상실은 영권입니다.
초대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내게 있는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던
바의 반대적 모습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입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영권은 시대와 교회의 열매인데 뿌리가 부실하면 맺을 수 없습니다.
복음적이지 못한 부실씨앗, 부실 뿌리, 그리고 부실한 열매,혹은 없는 무화과 나무같은 경우 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상황인데도 알지 못합니다.
눈 먼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영권 상실이 사회적으로 빛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늘어도 교인이 감소했습니다.
어제는 신림동 왕성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소식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유명했지만 훌륭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들아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교회가 자성해야 한다." 고, "교회가 자기만의 천국이라"고,
3)무엇에든지
본문에서 가장 강조된 단어는 무엇인가요? '무엇에든지'
일상의 모든 삶속에서 입니다. 구체적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래에서, 여행지에서,
흔히 관행이라는 것을 따릅니다만 성도의 관행이 새로 도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의 자유가 공화를 이루는데 기여함같이 개인,개교회의 모습이 하나님공화국을
이룸을 알아야 합니다.
피차 격려하고 피차 감시해야 합니다.
3) 행하라
집에서 키우는 개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왔습니다. 개치곤 사회성이 부족합니다.
동물이지만 어미 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티나는 것입니다.
목사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선배밑에서 실천신학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선배도 있고 스승도 있어야 합니다.
성덕을 본받아야 합니다.고난을 받아 들이는 신앙도 배워야 합니다.
나라사랑과 교회와 이웃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비로써 행함이 이루워 집니다.
결론) 평강은 골방에서 잉태되어도 일상의(무엇에든지) 삶에서 영급니다.
- 이전글자 족, 빌4~13 12.11.08
- 다음글관 용, 빌 4:4~7 12.11.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