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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제물, 빌 4:14~20 > 나의간증

향기로운 제물, 빌 4: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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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08 19:58 조회 2,8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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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사님들이 귀국하면 치닥거리를 하곤합니다.
방송사나 신문사에 인터뷰를 주선하고 또는 주일이나 삼일기도회 때에
교회 초청을 받아 선교보고를 하도록 합니다.
선교사들에게는 격려요. 청함을 이루는 곳은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1)금번에도
사실 선교사들을 위한 치닥거리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을 대신해서 부탁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분이 오셨기에 한주간을 함께 움직이다시피 했습니다.
두 교회가 선교사사역을 격려한다며 금일봉을 드렸고 여러분이 여러번의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제 개인의 신세도 됩니다.

금번에도 느낀 점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 교회와 성도들이 훌륭합니다.
자신들이 사는 일도 힘든데 섬기고 나누는 일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저도 해외 선교를 갑니다만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보따리 풀어야 하고 방문 나라 공무원까지 접대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훌륭한 신앙미덕에, 짧은 기독교 역사속에, 해외 선교사 25000명을 파송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 성도의 형편과 교회 규모와는 무관했습니다.
한마디로 백수의 집사가 식사를 대접하고 빚있는 작은 교회가 맞이했습니다.
마음이 앞서니 어떻게든 공궤했습니다.
결국은 "주는 자가 받는자 보다 복있다."가 성취 됩니다.

없는 것과 인색은 다릅니다.
인색은 베풀지 않습니다. 개인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색의 경우 커도 작은 것이요. 있어도 없는 것입니다만 베풂은 작아도 크고 없어도 있는 것입니다.

2)작아도 큰 교회
이런 경우,사람이면 작은 거인 이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작은교회입니다. 시작됨이 짧고 성도가 적으며 재정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를 서너 번 도왔습니다. 큰 교회인 것입니다. 돕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늘 강조한대로 경건입니다.
형편은 무엇인가요? 상황인데 일종의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않하고자하면 늘 상황으로 변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고자하면 구실이 되지 않습니다.
없으면 없는 형편대로, 있으면 있는 형편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럴 수 없습니다.
형편을 초월합니다. 주께 향한 자세이기에 형편이상으로 나아갑니다.
없거나,나빠도 지극 정성이 묻어나기에 기적의 단초가 되곤합니다.
이 행위는 자기 머리위에 면류관을 얹는 행위이기에 권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가 좋은 예입니다. 가난한 가운데 정성으로 섬겼더니 더 풍성케 되어 사는일이 되었습니다.
반대의 경우,수넴의 한 귀한 여인이 주의종을 섬기는데 '주도면밀'했습니다.
덕분에 이 여인은 구하지도 않은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이 일사병으로 죽자 다시 살아남을 받았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부하게 되거니와 과도하게 모아도 가난하게 되느니라"
개인적으로 즐거워하는 말씀입니다.
가난해도 부할 수 있는 언약입니다.

3) 하나님께
빌립보교회의 나눔은 사도에게 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것이다."로 인정되었고
"하나님이 그 풍성한대로 너희 쓸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축복되었습니다.
이 이유는 사도가 사익으로 받거나 용도로 집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각근히 행할 일은,
받는 자는 축복하며 감사히 받고 바르게 집행해야 합니다.
드리는 자는 하나님게 드렸기에 잊어야 합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작던 크던 드린 손길을 헤아리며 명목대로 집행하고자함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집행하고자하는 깨끗함이 있습니다.
혹 그렇지 못한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빌립보교회는 어려운 중에도 사도에게 힘을 나누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에 사도와 동역했습니다.
사도는 이 사랑에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일지라도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축복하는 목사님들이 이 마음과 드린 이들의 수고를 헤아린다면 아름답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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