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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 빌4:23 > 나의간증

마지막 말, 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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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13 15:59 조회 2,7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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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빌립보서의 마지막 구절을 대하고 있습니다.
단문이기에 기록해 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마지막은 언제나 마지막 잎새처럼 아쉬움과 회상으로 몰고 갑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인사말도 격조와 격식이 있습니다.
격조란 신앙의 인사이고 격식이란 이 인삿말에도 교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 마지막 말
여러분은 생애 마침의 말이 무엇일까요?
참새도 죽을 때에 "짹"한다는데 평생 예수안에 산다고 했던 그 신앙을 어떻게 말하겠나요?
사랑하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향한 마지막 말!
미국의 명 코메디안이었던 버너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랍니다.
최근 신문을 보니 더 압권인 것이 소개 되었습니다. "웃기다가 자빠졌네" 개그우먼 김미화가 생각 한
자기 묘비명이랍니다.

사는 동안에 자기 죽음의 묘비명까지 생각하니 기특합니다.
이런 자들에겐 죽음이 홀연히 오질 못합니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로 마지막 말을 할까요? 본문의 축복이 좋습니다.
눈꺼풀이 무겁게 닫히고 호흡이 힘들어 질때에 "주~우 예수우 그리스도의 으 ㄴ혜가 너흐  ㅣ 심령에 있을찌어다"
위의 마지막 말을 훈련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안에 머물면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2) 주 예수
사도는 성부도 성령도 아닌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성령은 성자께 영광을 돌리기에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일입니다.
요12:44~45)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언제나 이 체제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을 믿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만나주십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도록 믿음을 주십니다.

사람이 고안한 방편이 아닙니다. 하나님 계시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기도할때 누구의 이름으로합니까?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자격이고 의의 총칭 아닌가요?
기도의 대상은 성부이면서 자격은 아들이신 성자입니다.
우리는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뵙습니다.
성자된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대표하진 않지만 하나님의 중심된 신분이며 위치입니다.
무엇보다도 네게 '주'가 되십니다.

3) 은혜가
사도는 '믿음'이 아닌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종이지만 은혜의 종입니다.
복음의 종이 은혜로 되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은혜가 무엇인 줄 압니다. 일군이 일한 댓가로써 주인에게 받는 삯이 아니라 일을 아니했을지라도
주인이 베푸는 호의인 것을,
그가 사무치게 진술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주변을 보면 은혜를 바라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진가를 모르니 은혜가 헛됨을 당합니다.
사도는 그 은혜를 올곧게 아는 만큼 다른 사도보다도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상천하지의 가장 좋은 것은 다 은혜로 주셨습니다.
죄사함, 의로움,영생,믿음,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소망, 가족, 햇볕,공기등
문득 낙옆진 길에서 낙옆을 밟고 가다가 이 역시도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수돗물 쓰듯이, 걷는만큼 요금이 나오면 걷질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결론) "심령에 있을찌어다."는 중요합니다. 심령은 우리의 인격의 좌소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분명 내안에 존재합니다, 생물적 기관은 아니더라도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며 하나님이 터치하는 곳입니다. 믿음이 담겨지고 하나님 경외심이 고양되는 곳입니다.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불신자에게도 없습니다. 성도의 영적 기관입니다.
이 곳에 은혜가, 주의 은혜가 머물려야 온 인격에 공급되고 비로써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 되며
'생령'이 됩니다.

묘비명까지는 생각해 놓지는 못해도 이 축복을 묵상하여 내것으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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