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주기도문 강해-2)
페이지 정보
본문
마6:9~13
2009. 4. 26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그중 행동은 명함이나 말보다 최고의 자기소개가 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도 글도 있지만 행동으로 더 나타내야 합니다.
그 신앙적 행동중 기도는 예배, 선교,자선등과 다르지 않습니다.
1)하나님
우리 예배와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최고의 신이며 창조의 신이며
거룩의 신이며 자비의 신이기도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도다.」
롭1:20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시113:3~) 해 돋는데서부터 해 지는데 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너무 두렵고, 너무 권위적인 존재라는 생각에 하나님의 고유명사인
「여호와」를 주님(Lord), 아도나이(Adonai)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믿은만큼 인간의 입으로 말하기가 너무 성스럽기 때문이었습니다.
2)하나님 아버지
이토록 긴장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을 친밀한 관계와 신분으로 소개하시고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일까요?
실제 하나님께는 성구별이 없으신 만큼 남자도 아니고 여성도 아닙니다.
그러나 옛 시인이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키우셨으니" 한 것처럼
낳기는 실제 어머니가 낳았어도 아버지가 내 근원됨을 표현한 것처럼
①나는 물론 모든 세계가 하나님에게로 부터 말미암았기에 아버지가 타당한것입니다.
②또한 모든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으로의 기업을 물려 받을, 약속있는 후사 즉 상속자입니다.
지금의 우리 문화에서는 어머니도 상속을 줄 수 있고, 딸도 상속을 받을 수 있지만 상속은 아버지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적 기질보다 아버지적 기질로 다가 오신것 아니겠습니까?
③무엇보다 예수님이 아버지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어머니 혹은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
아니면 하나님 어버이 등의 이유가 나름 설득력을 잃은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심에
더 이상의 할말을 잃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까지 가르치셨습니다.
요20:17)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 하라,
우리 신앙 모본은 예수님이「언제나」「무엇이든지」입니다.
이「하나님 아버지」는 친밀감을 더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실제 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종교적입니까? 관계적인 것입니까?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어느곳이든'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우월합니다.
마7:9~11)너희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개선군 선두에 서서 로마시내를 행진하는 황제에게 한 아이가 뛰어들었습니다. 호위병이 놀라 제지했습니다.
"저 분이 누구신줄 아느냐? 황제니라"
아이는 외쳤습니다.
"너희에게 황제지만 내겐 그리운 아버지니라"
3)우리 아버지
문제는 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여야 합니까?
내 아버지여야만 됩니까? 저희의 아버지여야만 됩니까?
예수님은「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만 되고 저희 아버지가 않되면 문제이고
반대로 저희 아버지는 되어도 내 아버지가 않되면 문제가 많습니다.
아들 딸 아이가 서로 내 아버지라고 싸우는 모양을 보았습니까?
내 아버지만 될 경우 내 욕심과 내 문제와 내 소망만 장황하게 들어주는 하나님이 될 경우가 높습니다.
저숙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의 경우 내 세계가 아닌 하나님 세계로 나아가 보다 더
이기적에서 이타적 이유로 하나님을 뵙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모양입니다.
내 우물, 내 길이라고 해서 혼자 쓰고자 하면 자신도 남도 죽습니다.
공동으로 쓰도록 내놓을 때 남도 나도 살게 됩니다.
기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속에 내가 있지 내 속에 우리가 있질 않습니다.
암센터의 환우들을 위해 기도할때 내 감기와 문제는 크지 않음을 알고
아프리카, 동남아의 빈곤한 사람들의 양식을 위해 기도할 때 좀 더 큰 집을 선호하는 기도에 죄송스럽고
북한의 고통받는 인민들을 위해 자유를 구할때 나는 참 많은것을 누리고 있음을 발견하며 책임이 수반됩니다.
변화는 여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세상에는 수많은 신이라 칭하는 유.무형의 존재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부족마다 고유하는 신을 섬기며 자신의 신을 최고로 믿습니다.
알라, 비슈누, 바알, 토르, 제우스, 모택동, 공자등
그러므로 우리가「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다른 신과의「구별」이며 아버지 하나님이라 함은「친밀감」이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우주적」임을 나타냅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 의미를 갖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 이전글임하는 나라(주기도문 강해-3) 09.09.07
- 다음글기도백서(주기도문 강해-1) 09.09.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