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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16 > 나의간증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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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04 19:39 조회 2,589회 댓글 0건

본문

천로역정은 기독교 고전인 만큼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도서입니다.
땜장이 존 번연이 장가를 잘 가 예수믿는 부인으로 하여금 전도를 받고 설교를 하던 중
무자격 설교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서 집필한 성도의 "구원여정서'입니다.

이 도서를 보면 믿음씨가 신앙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 각가지 유혹과 환난을 통과한 후
마침내 천국에 도착합니다.

우리 신앙에는 시작이 있고 환난과 유혹의 과정이 있고 마침내 목적지의 안착이 있음을 웅변합니다.
어디쯤 오셨나요?
이 여정에 성령님이 보혜사가 되시어 벗된 동행을 이루워 주십니다.
이 분이 없었다면 믿음씨의 구원 여정은 실패했을 것입니다만 오히려 그 완성을 이룹니다.

1) 구원을 이루라
우리 기독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때에 이미 구원을 얻었고 그럼에도 죽는 날에 이르도록
계속된 구원을 이루는 신앙입니다.
수료도 없고 졸업도 없습니다.
교회학교의 경우 학년 초에 '진급식'을 이루는 경우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이룬 구원은 '죄의 형벌'에서의 구원이라면(칭의)
계속 이루는 구원은 '죄의 세력'에서의 구원이고(성화)
세상 떠날때의 구원은 '죄의 실존'에서의 구원인 만큼(영화) 비로써 이룩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시작과 마침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정하시고 택정하시고 거룩타하시고 구원하시고 의롭다하시고 양자삼으시고,
마침내 영화롭게까지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나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6)"

이미 이룬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았다면 계속 이루는 구원은 '성도의 견인'으로써
성령님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통해서 믿게하시고 삶속에서 이루도록 주장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누구든지 처음 주를 뵙던 그 때부터 구원을 이루어왔기에 '주께로 더 가까이' 간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또한 은혜안에서 왕노릇하는 사람임에도 확실합니다.

2)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신앙의 목적, 혹은 완성을 향해 나가는 여정과 일은 마치 출애굽의 여정과 동일합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지만 떠날때는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광야에는 참 원망과 시험과 시련이 많았고, 이 모든 날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동행했습니다.

이들이 삼일 길을 사십년 걸린 것은 오랜 애굽생활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고 애굽화된 까닭입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지향하면서도 애굽의 패턴을 버리지 못했기에 종종"애굽으로 돌아 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우리는 아직도 세상 패턴을 그대로 갖고 천국을 향합니다.
이미 얻은 구원(출애굽)에서 얻을 천국(가나안)의 여정은 광야인 만큼 곧 '긴장'의 과정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끊임없이 대두됩니다.
어떤식으로 해결하나요?

또한 많은 장애요 거침인데 하나님이 계셔도 다 문제해결을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강화'를 위해서 입니다.
동물도 자기새끼를 키울때에 이 강화훈련은 필수입니다.
하물며 나를 예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이야 오죽하리요.
이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원망합니다.
히12:10)~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물론 때를 따라 돕습니다만  이 장애와 유혹앞에서 성도의 거룩을 유지하게 하심이 목적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가 빛들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선수의 영광은 선수만이 아닌 코치와 국가의 영예가 되듯이 온전한 성도의 인격과 신앙은 그 성도만이 아닌
교회와 주의 나라의 영예가 됩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좌담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임에도 빛들로 나타나지
않았기에 기독교인 수가 감소되었다고 했습니다.
어찌 그 두 분 때문이겠나요?
언제든지 어느 성도든지 빛들로 나타나지 않으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원망과 시비거리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우리의 역할
우리는 빛의 사자입니다.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손해볼지언정 해를 끼치지 말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애굽의 패턴은 벗어 버리고 가나안의 패턴을 익혀야 합니다.그런데 그렇치 못하니 세상도 책망합니다.

노회의 두 분 목사님은 신학교 동기입니다.
그런데 피차 고소하며 세상법정까지 갔습니다.
없는돈에 변호사들을 선임하며, 이 사안을 제 아들아이가 알았습니다.
"아빠,목사님들은 설교하면서 용서하라면서 진작에 자신들은 왜 용서 못하나요?"
저는 유구무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총회는 총회사무실을 놓고 h목사파가 접수하면 g목사파가 다시 몰려와서 접수하고 등의
반복된 시비와 원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때 성경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디도서 1:10~16를 읽어봅시다.

다툼은 정욕에서 옵니다. 마귀적입니다.원망과 시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약속의 안식이 남아있을지라도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실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그랬지 않나요?
가나안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럴 수 없지요.

결론)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를 명심합시다.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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