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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브로디도, 빌2:25~30 > 나의간증

에바브로디도, 빌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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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06 13:18 조회 2,7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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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여러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남녀노소를 떠나서 인상과 앉거나 서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나름의 성품과 인품과 생활수준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인물
과연 성경만큼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도서가 있을까요?
삼국지도 등장인물이 많지만 성경에 비할데가 못됩니다.
대하소설 토지도 그렇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그 성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오래전에 주님의 12제자를 설교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회사면접관 시각으론 가롯유다가 돋보일 뿐, 다른 제자들은 비교적 채용기준에서 미달입니다.

믿음의 아비 아브라함은 어떨까요?
고집이 쎈, 그러면서 겁많은 사람같지 않나요?
이삭을 바치는 일엔 망설임없이 즉각 준행했지만(아내와도 의논하지 않은 만큼, 일반시각으론 옹고집임)
자기 사는 일엔 아내 사라를 아비멜렉 왕에게 진상(?)한 나쁜,그리고 겁많은 사내입니다.
이런 남편을 "주"라 한 사라가 더 훌륭하지요.

모세는 어떨까요?
강직한 사람 같습니다.
형도 책망했고 조카들이 제단 불을 잘 못 다루워 죽었을때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건강미가 넘친 것 같습니다.
실제 세상을 떠날때도 눈이 흐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엘리사는 어떨까요?
궁핍했지만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영권이 있어 위엄이 충만하여 위풍당당했을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어떨까요?
열정의 사람같습니다.
누군가 주 라했더니 벗은채로 호수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해 검을 뽑기도 했지요, 다혈질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소심해서 주님 잡히시던 날 밤 한 여종이 "너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느냐? "하니
주님을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습니다.

요한은 어떨까요?
본성은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곳을 향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사르게
기도하소서"투로 주께 건의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신중하며 온화하게 변화했습니다.
주님이 "너희 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하시니 "내 니이까?"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의탁했을 만큼의, 훌륭한 사람입니다.
특히 밧모섬 유배살이 후"형제들아 서로 사랑하자"의 멧세지를 일갈할 만큼의 온유함도 갖추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떨까요?
원칙의 사람같습니다.
율법에 완전했음이 반증입니다.
논리의 사람같습니다. 로마서의 논리가 웅변합니다. 그러면서 정적인 사람 같습니다.
마가와 누가를 "겨울 전에 오라" 고 했지요.
특히 그의 주변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인색한, 몰인정의 사람에게는 주변이 비어있지 않나요?
본문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아픈 것을 보며 근심도 합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로디도는 어떨까요?
매우 성실한 사람같습니다. 학교 다닐때 공부나 활동보다는 개근상을 탔을 사람같습니다.
사실 언제나 필요한 사람입니다.
현대는 능력과 실력위주라서 성실이 진부하게 간주되지만 하나님께는 합당한 사람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
오늘 지하철에서 맞은편 사람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입은 옷을 보니 넉넉치 않은, 그러나 단정한, 마치 면접을 보러가는 듯한 긴장도 보였습니다.
미남도 호남도 아니요 근육질도 아닌 오히려 허약한 몸이었지만 맡겨진 일에는 수완과능력을 발휘하기 보단
매우 충성될 성 싶어 유심히 보았습니다.

이 에바브로디도가 이러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러기에 교회의 파견으로 교회를 대신해서 사도의 옥살이를 돕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이 맡겨진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던지 자신은 병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병든 일을 교회가 알고 근심한다는 사실에 또 근심이 되었습니다.
믿음없는 모습인가요?

이런 사람은 전혀 현대적이거나 도시적일 수 없어도 참되니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성도를향해서 '신실한 성도'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믿음 더하기 성실함의 준말입니다.
성도는,믿음은, 신실해야겠기에 부르는 것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R2B 라는 영화를 보니 주인공이 비행 조정술은 탁월했도 과시하며 도전을 즐겼습니다.
이런 그에게 상관은 주의를 줍니다."군인은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기 보담 명령에 순종해야 된다."
같은 교훈을 봅니다.
교회나 복음이 증거되는 일은 주의 일입니다.
개인의 일이 아닌 만큼 수완이나 능력위주 보단 '충성'이 으뜸입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12영의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었으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 덕에 모세보다 더 뛰어난 충성의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사도가 주창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수단과 과정은 생략된 체 오직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시대와 조직에는 성실과 충성은 잊혀집니다.
참 일군보다 모략과 불법과 편법이 기승합니다. 신뢰는 추락하지요.

3) 나타난 은혜
사도는 복음에 매인 종으로써 충성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에바브로디도도 사도를 돌보는 일에 충성하다가 병 들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안을 감안하여 근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참 신앙의 모습을 봅니다.
피차간에 지체의식입니다. 하나가 아프니 온 몸이 아픕니다.
누가 기뻐하면 반대로 모두가 기뻐하겠지요.
건강한 교회모습입니다.
이런 교회는 마귀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이런 교회는 쇠할 요소보다 흥할 요소를 지녔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평안하여
그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됩니다. 아멘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긍휼의 은혜가 임했고 사도 역시 근심위에 근심을
모면하는 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결론) 몸의 건강 비결은 혈액순환입니다.
가정의 행복비결은 소통입니다. 교회의 은혜비결은 목사의 학위가 아닙니다. 장로의 사회적 지위도
아닙니다. 대다수 성도의 재산도 아닙니다.
사랑이고 충성입니다.곧 '성도의 교제'인데 '함께 함'입니다.
믿음의 또 다른 호칭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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