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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모델, 빌3:17~21 > 나의간증

신앙모델, 빌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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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11-07 10:54 조회 2,5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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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이루는 성도는 내적증거가 있습니다.
곧 영생이요,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이 생명이 참 변화를 이루며 구원의 완성을 지향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작아도 살았으면 물길을 거슬려 상류를 올라가도 아무리 커도 죽었으면 물길따라
흘러 내려가는 이치입니다.

이 법칙은 새생명의 원리, 곧 성령의 생명의 법이기에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성화를 이루는 성도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영적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무엇을 말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내 주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수사학의 향연이 아닙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새로운 목적이 생겼습니다.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4절) 푯대를 향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압니다.

이 성화는 육체의 유아기, 사춘기,청년기, 장년기,노년기로 구별되듯이 확연히 구별됩니다.
다만 세월따라 구별되지 않고 내적 상태따라 구별되어 각기 증세가 나타납니다.
과연 내적 상태는 어떤가요?
구원의 기쁨을 갖고 있나요?
여러 시험에 맞서고 있나요?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나요?
계속된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1) 모델 필요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모델이 있는 신앙은, 꿈은, 한결 수월합니다.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순복음 교회 교역자들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영락교회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선 선배를 닮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나를 본 받으라"함은 완전하거나 확실해서가 아니라 멘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교제'라고 하며 구역,순 등의 교회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역장, 순장의 지도자가 신앙적이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사도의 주모델은 주님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주모델입니다.
토마스 아퀴네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를 읽기를 권합니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2)천국을 사모하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천국을 사모하는 것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많은 종교가 내세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내세는 나름의 천국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를 통한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준비하시는 곳, 앞선 성도들이 안식하는 곳, 하나님 영광의 보좌가 있는 곳,
죄와 슬픔이 없는 곳,(얼마나 많이 계시되어 있는지요.)

대략적이지 않고 확실한 장소입니다.
20절)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곧 예수를 믿어 그 안에 머물면 천국에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얻습니다.
세상을 이김이고 죽음을 이기는 승리의 모습, 아닌가요?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빌3:21) ~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하리라

3) 안타까운 일
복음의 신앙은 이렇 듯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만 믿음으로 오히려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습니다.
집안의 탕자가 된 것입니다.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고 왕펄에서 왕골이 난다" 생명과 속성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신앙은 정녕 초대교회 신앙과 사뭇 다릅니다.
신학이 물 흐르듯 성경적이지 못하고 그 터의 신앙은 '주'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기에
고난앞에서 사족을 못씁니다.

북경 두란노교회 담임목사님은, 중국에 선교한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라고 했습니다.
"중국교회는 고난을 통과한 신앙이기에 중국교회에서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했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북한 신앙도 그럴 것입니다.

결론) 신앙은 씨앗이 같다면 잎과 열매는 같습니다.
200년 전의 볍씨를 발굴했기에 키웠더니 지금의 벼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토양이 문제입니다.
제 부친은 "피난 시 이북의 메밀을 갖고와 이땅에서 심었지만 이북메밀 맛이 안났더라." 하셨습니다.
물과 기온의 차이가 다른 맛을 낸 것입니다.
기독신앙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진수를 나타내지만 번영과 풍성에서는 쇠퇴하는가 봅니다.
지금은 이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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