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아브라함의 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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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브라함의 중보
창18:32 “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할수록 장엄한 모습입니다.
위 모습을 상상할수록 한 사진이 떠오릅니다. 탱크의 행렬을 막아선 한 청년 즉 한 청년의 목숨내건 용감함이 데모군중을 향하여 돌진하는 탱크를 멈추게 한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앞에서 백성을 위하던 모세!
그리고 모든 죄인의 대제사장되어 지금도 중보기도하시는 주님 !
중보자만이 중재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도 생각하고 소돔,고모라성도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탄원할때는 하나님도 심판을 유보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탄원이 그치자 하나님도 즉시 가시므로 심판이 임했습니다.
●중보의 위력입니다.
빗나간 아들 어거스틴을 위해,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하여 아들의 돌이킴이 있게 했습니다.
주님도 이 땅위에서 중보기도 하셨습니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물론 지금도 살아계셔서 중보기도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중보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본문을 대할 때마다 크게 아쉬운 것은 왜 아브라함이
“십인”에서 멈추었는가? 하는것 입니다.
더 구하고 더하여 “오인” , “일인”, 그래도 되지 않으면 “오직 은혜로써” 했더라면 소돔,고모라성은 심판의 대명사가 아니라 은혜의 대명사가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입니다.
우리 연약함 때문입니다,
기도라는 큰 위력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약함은 곧 지쳐서 한계성을 드러내곤 합니다.
그러므로 뭐든 그렇지만 기도도, 은혜를 입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영적 일입니다.눅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주님도 이랬다면 우리야 더 말해 무엇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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