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쉬지않는 전도, 행5:17~42 > 나의간증

쉬지않는 전도, 행5:17~4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17 14:48 조회 2,366회 댓글 0건

본문

일전의 어느 목사님, 자신이 교회를 개척했지만 되지않자 홧김에
동네교회당들을 방화하다 구속되었습니다.

유대교는 난리가 났습니다. 숫자는 줄고 제사장들은 권위가 서질않고 느는 일은 화였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지만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여 옥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화가 난 저들은 사도들을 죽게하려했습니다.
33절)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쌔

전쟁중에 가장 무서운 전쟁은 이념이나 인종이 아닌 종교전쟁입니다.
한 민족에게 이 같은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때, 전쟁을 방지하고자 원로가 제안을 했습니다.
39절)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들은 매만 맞고 풀려났습니다.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칩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핍박에 강해집니다.'
산동네,나사렛 복음인 까닭입니다.
사도들은 칭찬,신명에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핍박에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전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42절)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많은 제국과 사상이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습니다.
옛 로마가 그랬고 나찌당이 그랬고 일제가 그랬고 공산당이 그랬습니다만
오히려 저들이 망했습니다.

밟으면 퍼지는 잔디처럼 기독교는 숨어서라도 잠잠하지 않고 쫒겨서라도 외칩니다.
중국의 기독인이 약1억명이랍니다. 인구 비례로는 미약하지만 단일국가으로서는 최고입니다.
특별히 모 택동시절 죽었다던 기독교가 등 소평 시절 개방개혁과 더불어 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생력 없는 중국교회를 위해 선교사들이 지금껏 수혈하고 있는 덕입니다.

북한도 비슷합니다.
미국의 모 한인목사님의 논문을 보니 ㅇㅇ도는 약75%가 믿고 있답니다.
물론 은밀히 믿습니다.
대체로 방송을 통해서 믿는 경우가 제일이고, 그 다음  중국이나 여행객을 통해서,
마지막으론 믿는 부모들을 통해서 입니다.

주일이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근 인접지역으로 예배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름에, 뱀에 물린체 교회당을 찾아온 사람도 만나 보았습니다.
성경을 뒷산에 감추어 놓고 몰래 그 산에 올라보곤 한답니다.
이불쓰고 방송에 귀 기울여 설교를 듣곤 한답니다.

누런종이에 라디오를 받아 쓴 성경은 아주 두꺼웠습니다.
찬송가는 음표가 없습니다. 조악스럽기는 그지없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남녘성도들을 위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태평과 풍성에 죽어가는 신앙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금 신앙은 금박물린 성경과 찬송가가 아닙니다.
핍박 앞에서 견디는 신앙입니다.
정금이 불시련을 통해 불순물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대적인 환난과 핍박은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덕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환난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주를 만난 곳은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였습니다. 그 생활끝자락에서 주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진 때는 이 때였습니다.
모든 신앙의 영웅들은 다 이처럼 빚어졌습니다.

복음의 위대함은 불시험을 혼자가 아닌 주가 성령으로 동행하심입니다.
부활하신 주이시기에,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았나요? 버림이 아닌 합당한 자로서의 인정입니다.
감사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의 흔한 복은 성도에게 독약이 될 성 싶습니다.
주의 일에 힘씁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